거꾸로 가는 '질병관리'…조류독감 백신접종 중단 지시

  • 입력 2004년 1월 29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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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대재앙을 초래할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 우려가 높은데도 방역당국이 이의 예방에 소극적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나섰다. 29일 학계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옛 국립보건원)는 지난해 12월 23일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조류독감 발생에 따른 인체감염 예방 및 관리지침’에서 조류독감 발생지의 양계농이나 폐사 담당자에 대한 예방백신 접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또 일본이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돼지에게 조류독감이 생기는 것을 감시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돼지 모니터링을 실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충남도 관계자는 “방역당국이 지난해 12월 중순 조류독감 발생지역 주민과 폐사 담당자에게 예방 목적으로 독감치료제 ‘타미플루’를 복용케 하고 동시에 예방백신을 접종케 했다가 이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전남 나주시보건소는 “조류독감 발생지역 주민에게 타미플루를 복용케 하다가 질병관리본부로부터 투약을 중단하라는 연락을 받고 남은 2000알을 제약회사에 반납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류독감 발생지역의 주민이 사람독감에 걸리면 조류독감과 사람독감 바이러스가 결합해 변종 바이러스가 생길 위험이 높은데 사람독감 예방백신 접종을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질병관리본부측은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낮은 데다 백신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어 무작정 접종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백신 품귀현상이 발생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백신을 비축해야 하고 지난해 국내에서 이미 1500만명이 독감백신을 맞아 독감이 유행할 가능성도 아주 낮다는 것.

그러나 전문가들은 A사의 고가 백신이 상당수 있는 데다 조류독감이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아직 단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반박했다. 조류독감 발생지역 주민의 혈청과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받아 분석하고 있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검사 결과가 나와야 인체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농림부는 “중국이나 동남아와는 달리 한국은 양돈농과 양계농이 별도이기 때문에 닭이나 오리의 바이러스가 돼지에게 옮길 위험은 적다”면서 돼지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처지의 일본은 대대적인 돼지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고 독감 백신과 독감 치료제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관리본부의 한 조류독감 자문위원은 “우리도 일본처럼 변종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충남대 서상희(徐相熙·수의학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가 ‘지구의 재앙(Global Pandemic)’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변종 바이러스 출현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는데도 국내의 방역 대책은 너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처럼 인류의 생명과 보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그 가능성이 매우 낮아도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나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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