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인없는 유언장 500억원대 법정공방

  • 입력 2004년 1월 2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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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이 친필로 쓰였으나 날인이 없다면?

한 사회사업가가 '전 재산을 연세대에 기부한다'는 내용의 친필 유언장을 써놓고 운명했으나 유언장에 날인이 없어 연세대와 유가족 사이에 최고 500억원대의 법정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지난해 11월5일 알츠하이머 등의 지병으로 작고한 김운초(金雲超) 사회개발연구원장은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은행 대여금고에 1997년 3월8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유언장을 남겼다.

친필로 '본인 유고시 본인 명의의 모든 부동산, 금전신탁 및 예금 전부를 교육기관인 연세대에 한국 사회사업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고 쓰인 유언장에는 김씨의 친필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등은 적혀있으나 도장이나 지장은 없다.

고인의 형제와 조카 등 7명은 '날인이 없는 유언장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고인의 예금이 입금된 은행 2곳을 상대로 예금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일부 부동산에 대해서는 명의 이전 작업에 착수한 상태. 그러나 은행에선 고인이 남긴 유언장 때문에 지급을 거부했다.

기부사실을 몰랐다가 뒤늦게 은행을 통해 이를 알게 된 연세대는 유족들이 낸 소송에 대해 지난해 12월 초 독립당사자 참가 신청을 했다.

'독립당사자 참가'란 타인간의 소송에 제3자가 당사자로서 참가하도록 한 민사소송법의 한 제도.

연세대측은 2일 오후 교내 스팀슨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필이름이 서명을 대신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며 "유족들과 법정공방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고인의 뜻이 기여금의 투명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연세대에 전 재산을 기증하는 것인 만큼 고인의 뜻을 받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반면 유족측 변호인은 "유서에 날인이 없는 만큼 유언장은 효력이 없다"며 "고인의 유산은 유족이 상속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사회사업가협회(IFSW) 평생회원이기도 한 김씨는 공동으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그리스도신학대를 설립하는 등 한국 사회복지계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인사.

고인이 남긴 예금과 채권 등은 120여억원에 달하며 경남 통영과 부산 해운대의 부동산 등을 합칠 경우 최고 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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