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시위 넉달반]불꺼진 도시로 변한 ‘生居부안'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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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거부안(生居扶安)’에서 ‘절해고도(絶海孤島)’로.

쌀과 해산물이 풍부하고 풍광이 뛰어날 뿐 아니라 자연재해가 적어 예로부터 사람 살기 좋다는 의미의 생거부안으로 일컬어지던 전북 부안이 핵폐기장 건설을 둘러싼 진통으로 ‘눈물과 분노의 부안’으로 바뀌었다.

넉 달 반째 시위와 진압이 이어지면서 사법처리되거나 부상을 당하는 주민이 급증하고 지역경제도 추락하고 있다.


전북지방경찰청은 7월 이후 ‘부안사태’와 관련해 모두 303명을 연행해 이 중 30명을 구속하고 6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구속자 수는 1990년부터 2년반 동안 지속된 안면도 핵폐기장 사태 때(13명)나 94년 굴업도 시위 때(7명)보다 2∼4배나 많은 수치다.

그동안 170여차례 열린 각종 시위와 집회에서 중경상을 입은 주민만 500여명이다. 이 중 40여명은 아직도 입원 중이다. 경찰도 235명이나 다쳤고 이 가운데 15%는 얼굴 등에 중상을 입었다.

특히 올해 들어 전국적인 경기침체 여파로 비틀거리던 지역경제에 핵폐기장 시위는 치명타를 가했다.

술집을 운영하는 김모씨(47)는 “이 난리통에 누가 술 마시며 즐기려 하겠느냐”며 “4개월 전 가게를 내놨지만 팔릴 기미조차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이 주민들의 야간집회를 원천봉쇄하면서 부안읍내 중심가는 해가 지면 ‘불 꺼진 도시’로 바뀐다.

상인들은 “수천명의 경찰이 야간이면 집회 장소인 부안수협 앞 도로뿐만 아니라 중심가 전체에 줄지어 서 있는 바람에 그나마 물건을 사려는 몇몇 사람들조차 위협을 느껴 포기하고 돌아간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전국적인 젓갈 집산지인 진서면 곰소항에도 김장을 위해 젓갈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예년에 비해 30%가량 줄었다.

‘할매집 곰소식품’ 김혜란 상무(44·여)는 “외지에서 젓갈을 사려는 주부들을 싣고 오는 관광버스 운전사들이 데모가 심하다는 이유로 충남 강경 등으로 차를 돌리는 바람에 김장용 젓갈 성수기인 이달 초 매출이 지난해의 60%에 그쳤다”고 말했다.

9000여명의 어민들이 일손을 놓고 시위 현장에 나가 부안수협의 올해 위탁 판매량도 지난해의 절반을 조금 넘는 45억원에 그쳤다.

부안군에 따르면 7∼10월 부안을 찾은 외지인은 올해 126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1% 줄었으며 시위가 격화된 9월과 10월에는 20∼30%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반짝 특수’를 누린 곳도 있다.

연인원 45만명의 전·의경이 투입되면서 이들이 식비로 지출한 돈만 어림잡아 50여억원. 일부 식당은 경찰에 밥을 판다는 이유로 한때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엄청난 양의 경찰용 도시락을 주문받아 짭짤한 수익을 올린 식당도 있다.

한편 부안경찰서는 20일 핵폐기장 반대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원천봉쇄에 불만을 품고 새만금 전시관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공용건조물 방화 예비)로 변모씨(45·농업) 등 2명에 대해 28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북경찰청장 “부안 경찰력 단계적 철수”▽

핵 폐기장 건설을 둘러싸고 전북 부안군 주민과 경찰의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단계적인 경찰력 철수 의사를 밝혀 부안사태가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준 전북지방경찰청장은 28일 “부안 주민들이 폭력시위를 자제하고 평화적으로 집회를 한다면 단계적으로 경찰력을 철수시키겠다”고 밝혔다.

김 청장은 “경찰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29일로 예정된 대규모 집회시 군청과 한국전력 등 일부 관공서 경비병력 20여개 중대 2000여명을 제외한 경찰력을 모두 집회장소 외곽으로 철수하겠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이어 “29일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나면 다음달 1일 70개 중대 가운데 절반가량을 철수시키고 이후 상황에 따라 추가 철수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핵 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는 “경찰이 집회를 방해하지 않으면 29일 평화적인 집회를 하겠다”고 밝혔다.

부안=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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