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동서남북/道교육청 국장의 자살의미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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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누명에 대한 항변인가,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희생인가.’

인사비리 파문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앞둔 제주도교육청 강병준(康炳浚·59) 기획관리국장이 16일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 국장의 죽음으로 제주 교육계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인사비리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자살현장 주변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아 강 국장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기 까지 최후 심정을 알 길이 없다. 15일 오후 강 국장을 만났던 형은 “동생이 ‘억울하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말했다.

강 국장의 자살은 자신에게 올가미가 씌워진 인사비리 의혹에 대해 죽음으로 결백을 항변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강 국장은 14일 사무실과 자택을 검찰이 압수수색한 데 대해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심리적 압박이 ‘억울한 누명’ 때문인지, ‘수사결과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강 국장의 자살은 그동안 ‘정실인사’에 치우쳤다고 지적을 받은 제주도교육청 인사 관행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7일 제주도교육청 등의 인터넷 게시판에 교육행정직 사무관 승진과 관련된 금품수수 등 인사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 게시된 이후 인사행정을 질타하는 지적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교감을 거치지 않은 채 교장으로 승진하거나 무시험전형으로 승진제도가 바뀐 뒤 사무관이 된 인사가 선배들을 제치고 서기관으로 승진하는 등 인사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1996년 제주 교육계의 수장이 된 김태혁(金泰赫) 교육감의 임기 말을 앞두고 그동안 잠재된 인사 불만이 한꺼번에 터졌다는 분석도 있다.

김 교육감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기획과 추진력이 뛰어난 인사를 발탁한 것에 대해 ‘정실인사’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면서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고 투명한 인사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인 교육감의 이같은 발언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다.

인사쇄신을 위해서는 진실 규명과 이에 따른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 것만이 무너진 제주교육계의 신뢰를 바로잡는 길이며 진정한 쇄신책을 마련하는 지름길이다.

제주=임재영기자 jy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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