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대학졸업 앞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씨

  • 입력 2003년 11월 9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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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앞에서 안내견 ‘창조’와 함께 포즈를 취한 김예지씨. -권주훈기자
피아노 앞에서 안내견 ‘창조’와 함께 포즈를 취한 김예지씨. -권주훈기자
“피아노는 세상과 소통하는 나의 또 다른 눈이죠.”

숙명여대 기악과 졸업반인 김예지(金叡智·23)씨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다. 13일 이 대학 음대의 콘서트홀에서 만난 그는 안내견 ‘창조’가 함께 있다는 것 외엔 긴 생머리에 하늘색 투피스 차림이 여느 여대생과 다름없었다.

그는 10월 31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일본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다케시 가케하시 공연에 트리오 멤버로 출연했다. 이때 베토벤의 ‘트리플 콘체르토’ 연주를 위해 바이올린 첼로 파트까지 악보를 몽땅 외웠다.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달리 여러 악기와의 앙상블을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의 대학생활 4년은 이런 식으로 ‘강행군’ 음악공부였다. 피아노 연습과 클래식 음악 감상, 그리고 음악회에 가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는 “한번도 미팅을 못해 본 게 아쉽지만 이젠 별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며 웃었다.

그는 내년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피아니스트 겸 음악교육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악 교육이 전무해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피아노를 연습했고, 점자 악보를 구하기 위해 일본에 e메일을 보낸 뒤 2개월을 기다려야 했죠. 음악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저와 비슷한 친구들을 가르치는 일도 준비하고 싶습니다.”

김씨는 두살 때 망막색소변성에 걸려 열두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세살 때부터 멜로디언을 연주하면서 동네 아줌마들의 트로트 반주자로 나설 정도로 악기 다루기를 좋아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연습한 것은 중학 2년 때부터. 첫 대입시험에선 낙방했지만 이듬해 숙대 음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시각장애인에게 연주인은 너무 험한 길’이라며 반대하던 그의 부모도 이젠 외동딸이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길 바라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정말 답답하죠. 어둠 속을 헤매다 좌절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현실을 인정하려고 애씁니다. 눈이 보이기만 했어도 정말 전체 수석은 내 차지였을 거예요.”

그의 밝은 성격이 자신의 밝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생각됐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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