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지난지 언젠데 지원금 아직도…

  • 입력 2003년 11월 7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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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주민들의 애타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직도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태풍 ‘매미’로 다리를 다쳐 치료 중인 경남 거제시의 이모씨(79)는 위로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태풍이 지나간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피해 조사 및 지원과 관련된 규정이 허술한 데다 예산 집행마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해지역 곳곳에서 재해지원금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어 서둘러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허술한 규정, 줄 잇는 민원=자연재해대책법을 토대로 만든 ‘자연재해 조사 및 복구계획 수립지침’에는 부상자의 경우 신체장애 7급 이상이어야 위로금 지급 대상이 된다. 부상자가 치료를 마치고 장애등급을 받기까지는 3∼6개월이 걸린다.

피해면적이 아니라 피해율로 구호비를 책정하는 농어업 분야의 지원금을 둘러싼 마찰은 더 심각하다. 피해지역 공무원들은 “현재의 규정대로라면 신(神)이 조사에 나서도 욕먹지 않을 수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논 500평에 심은 벼 전체가 피해를 본 농민에게는 500만원의 구호비가 지급됐다. 벼를 수확해서 얻는 소득의 4배 이상이다. 반면 5000평에 벼를 심은 농민은 500평의 피해를 봐도 지원을 못 받는다. 경작면적 2ha(6000평) 미만인 경우 피해율 80% 이상은 500만원, 50∼79%는 300만원, 30∼49%는 44만원의 구호비를 지급하고 있기 때문. 수산 분야도 마찬가지다.

또 피해지역 주민들은 “‘눈’으로 산정하는 피해율은 조사자에 따라 차이가 커 민원이 잇따르고 있으며, 형평성 시비로 이웃간 반목도 심하다”고 전했다. 더욱이 양식 어류와 수산 시설물은 정확한 조사가 어려워 과다 지급되는 예산도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더딘 구호비와 복구비 지원=이번 태풍으로 피해가 가장 심했던 경남도의 경우 7일 현재 구호비 1600여억원 가운데 1300여억원이 집행됐다. 그나마 최근 10여일 사이에 300억원가량이 지급되는 등 지원이 더딘 편이다. 수산물 피해가 많은 통영시와 남해군 등은 지급률이 60% 안팎에 불과하다.

사유시설 복구비는 2330여억원 가운데 1190여억원이 지급돼 겨우 절반을 넘어섰다. 주택복구비는 지급률이 37%에 그쳤다. 공공시설 복구예산은 이달 초 확정됐다.

이처럼 구호비와 복구비 지원이 늦은 것은 애매한 조사 기준과 비현실적인 지원 금액, 현장 조사를 담당하는 읍면동 사무소 직원의 부족 등이 큰 원인이다.

▽개선책은 없나=최근 경작 및 양식 규모가 크게 늘어난 만큼 특별재해지역 위로금 지원대상 기준 면적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고, 피해율이 아닌 피해량에 따라 구호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남지역 시민단체의 한 간부는 “가능한 한 주민이 피해 내용을 입증토록 하고 다른 기관의 지원을 받더라도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예산 낭비와 말썽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의 한 관계자는 “지원제도의 손질과 함께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예산을 쏟아 부을 것이 아니라 보험제도를 확대하는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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