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私교육]1부 사교육의 실체-④고액 과외 기승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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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3년생 C군(18·서울 서초구 서초동)은 9월 초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비해 한 달에 2400만원을 내고 과외를 받고 있다. 국어 수학 과학 등 3개 과목의 강사와 보조강사가 팀을 이뤄 일주일에 두 차례씩 C군 집으로 찾아온다.

C군은 “과목별로 강사들은 기본 개념과 개괄적인 실전문제를 정리해주고, 보조강사들은 문제를 풀며 정답 찾기와 ‘찍기’ 요령 등을 지도해 준다”면서 “한 달 수업료로 과목당 메인강사에게 500만원, 보조강사에게 300만원을 준다”고 말했다.

C군의 경우는 최근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수능 족집게’ 고액 과외의 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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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교육의 실체-③학원교육의 허실

▽실태=19일 오후 11시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A보습학원. 강사 3명이 한 달 동안 교실을 임대해 고교 3학년 수험생 8명에게 그룹과외를 하고 있었다.

강사는 참고서와 모의고사 기출문제, 도표와 그림 등을 짜깁기해 편집한 50쪽가량의 교재를 나눠주며 “지금부터 다른 책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호언했다.

학생들은 수능 전날까지 사회탐구, 언어, 외국어 등 3개 과목을 과목당 300만원씩 1인당 900만원을 내고 배운다. 교실 임대료도 학생 부담으로 교재비, 야식비 등을 포함하면 1인당 1000만원이 든다.

이곳에서 아들을 과외시키고 있는 학부모 K씨(48·서울 강남구 개포동)는 “과목당 몇 점씩만 더 받아도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법 고액과외를 막기 위해 정부는 2000년부터 과외교습 신고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올해 9월까지 전국의 과외교습 신고자 5만9000여명 가운데 교습비가 100만원 이상이라고 신고한 사례는 3건에 불과할 정도다.

▽왜 성행하나=단기 고액과외가 성행하는 것은 정해진 보기 중에서 답을 고르는 수능시험의 속성상 문제풀이 요령만 익히면 단기간에 성적을 올릴 수 있는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입시전형에서 수능의 일부 영역만 반영하는 대학이 많아 이들 영역만 집중 공략하면 합격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

고액과외 경험이 있는 한 학원 강사는 “강사들이 과목별 수능 점수 목표치를 제시한 뒤 보통 한 달에 과목당 200만∼300만원을 받는다”면서 “강사 몇 명이 그룹을 지어 ‘수능 점수 50점을 올려주겠다’며 부유층 학부모에게 거액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능 이후 실시되는 논술 및 구술면접 과외의 경우 강사의 경력에 따라 하루 지도에 100만원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학원장 최모씨(55)는 “논술과 면접은 지도하는 학교가 많지 않은데다 단기간에 실력을 쌓는 것도 어려워 과외비가 높다”면서 “하지만 강의 내용을 검증하기 쉽지 않아 학부모의 ‘위험 부담’이 큰 편”이라고 말했다.

▽고액과외 시장의 구조=고액과외 강사들은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활동한다. ‘잠실 박선생’ ‘서초동 김선생’ 등으로 실명을 숨기며 휴대전화 번호도 공개하지 않는다.

학부모 박모씨(49·서울 송파구 오륜동)는 “그룹과외는 학부모들이 입소문을 통해 주력 과목의 강사 한 명을 선정하면 이 강사가 다른 과목의 강사를 데리고 온다”고 말했다.

이 경우 맨 처음 강사를 소개한 학부모에게는 한 과목의 과외비를 면제해 주며 나중에 영입된 강사들은 주력 과목 강사에게 소개비조로 과외비의 20%를 건네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명학원 강사 엄모씨(50)는 “정답 고르기 기술에만 능한 일부 강사들이 수능을 앞둔 학부모와 수험생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과외시장에 덤벼드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 고액 그룹과외 강사에게 같이 과외를 받는 수험생들은 모의고사 성적은 비슷하지만 지원하려는 대학과 전공은 다른 경우가 많다. 지원 대학과 전공이 같으면 서로 경쟁자가 되고 논술이나 구술면접에서 비슷한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함께 팀을 짜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효과는 있나=지난해 과학탐구 고액과외를 받았던 재수생 이모군(19·서울 광진구 광장동)은 “모의고사 성적은 계속 올랐지만 막상 수능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외강사들이 이전 모의고사와 수능 기출문제를 위주로 가르치기 때문에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는 모의고사에서는 효과를 보지만 정작 수능에서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나오면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연세대 정종락(鄭鍾洛·경영학) 교수는 “면접이 10분 넘게 진행되기 때문에 단기 과외를 통해 철저히 대비를 하고 온 학생은 금방 티가 난다”며 “그런 학생은 점수를 낮게 준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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