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일문일답

  • 입력 2003년 10월 2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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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기회가 여러차례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노동당 입당 등을 해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지난 월요일 김형태 변호사는 송교수가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북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지금 회견에선 김철수란 이름으로 북으로부터 초청받은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사실 성명서에 들어있는 답변은 국정원에서 4일에 걸쳐 한 답변이다. 그 당시는 조사중이었기 때문에 해명할 상황이 안됐고 이제 관련서류가 검찰에 송치되었기 때문에 오늘 종합적으로 얘기를 할수 있게 된 것이다.

-(김형태 변호사)김철수란 이름으로 초청받은 일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회견에서 언급한 북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계산해 보면 대강 15만불 정도가 되는데 이를 받았지만 공작금으로 사용한게 아니란 것인지? 18차례 방북일정동안 김철수란 정치국 후보위원이란 신분을 인지했을텐데 사후에 그것을 알았다면 남북한의 경계인으로서 왜 그것을 명백히 거부하지 않았는지?

-어떻게 15만불이라는 계산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합산에 있어서 액수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것 같다.

정치국 후보위원의 인지와 거부에 대해선 그동안 상당히 많은 내적갈등이 있었다. 또,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직책이 사실로서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국 후보위원의 신분에 대해 자성적 성찰로서 거부했었다.

-(사회자)질문한 기자가 합산하면 15만불이 나온다고 했는데 송교수가 회견에서 말한 학술지원비 6-7만불, 항공료 2-3만불을 하면 계산이 맞는다. 어떻게 15만불이라는 것인지 설명해 주기 바란다.

△한국행을 결심하셨을때 한국국민들의 정서를 감안했을때 걱정은 없었는지? 입국해서 밝힌 사실을 봤을때 송교수가 거짓말한게 아니냐 하는 국민들 생각에 대해선?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북화합을 모색하기 위해선 내가 한쪽으로 치우친 모습을 보여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 가까이 외국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듣기만 했던 한국과 실제 입국해 본 한국은 차이가 있었다.

이런점에서 우리 민족이 상생하고 화해할수 있는, 평화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 줄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체포영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입국을 결심했다.

△황석영씨의 인터뷰 기사에서 송교수가 한국에 남고싶다는 말을 했는데 이후의 계획은?

-가르치는 직업이 내 직업이다 보니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여러 계획도 있었다. 원래 입국할때부터 이런 생각을 가졌었는데 전혀 그럴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송교수를 북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고 말한 황장엽씨에게 소송제기한 것은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사죄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당시 나의 기본입장은 내가 그러한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것도 한번도 인지를 못했고 권력의 핵심에 있다는 표현에 있어서도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당시 형사소송이 아닌 민사소송을 제기했었다. 사죄부분에 대해선 해당기관에서 법적인 결론이 나오면 충분히 수용할 준비가 돼있고 사죄할 것이 있으면 사죄할 것이다. 법적인 결론이 나오면 어떠한 결론이라도 받겠는데 가장 상상하기 싫은 결론은 추방이다. 37년만에 이땅의 한 부분이 되고자 귀국했는데 추방이라는 것은 상당히 감내하기 힘들다.

△비판적 성찰자로서, 남북한의 경계인으로서 살아간다 했는데 노동당 가입은 북한의 체제로 간다는 의미가 아닌지? 독일 뮌스터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교수로 나와있고 2003여름학기 강의계획안에는 강사로 표기돼 있는데 어떤게 맞는 것인지?

-경계인의 의미는 번역관, 즉 상호 정보교환자의 의미인데 내가 남쪽을 찾은 찾은 이유는 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자책감, 자기비판에서 나왔다. 교수-강사 부분은 우리말로 설명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 뮌스터대학에 직접 문의하면 설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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