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安風 사건’ 선고의 교훈 새겨야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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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예산은 흔히 ‘간첩 잡는 예산’이라고 불린다. 국가안보를 위해 예산의 세목은 비밀에 부쳐진다. 이러한 국가기밀의 우산 밑에서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안전기획부 예산을 선거자금 또는 통치자금으로 사용하던 그릇된 관행이 과거 정권에 있었다.

법원은 ‘안풍(安風) 사건’ 판결에서 국가안보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가져다 쓴 행위가 불법임을 명백히 하고 관련 피고인에게 무거운 실형 선고를 했다.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은 법정구속됐다. 강삼재 의원은 불체포 특권을 지닌 국회의원이어서 법정구속을 모면했을 뿐이다. 한나라당은 정치적 탄압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방탄국회를 열어 강 의원을 보호했고 강 의원도 법정에서 같은 논리를 폈지만 법원은 그러한 정치적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전 차장은 법정에서 1995년 지방선거와 96년 총선 때 안기부 예산에서 자금을 인출해 전달한 사실을 인정했으나 전달 경위와 중간 전달자는 밝히지 않았다. 역대 정권은 예산을 주무르는 안기부 운영차장 또는 기획조정실장 자리에 대통령이나 권력실세의 측근을 앉혔다. ‘안풍 사건’에도 당시 청와대가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검찰이 타협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한 인상을 준다.

역대 정권은 국가 정보기관을 정치권력의 사병으로 부리던 것도 모자라 예산까지 빼돌려 여당의 선거자금으로 썼다. 안기부의 일부 간부들은 한술 더 떠 여당후보에게 자금을 지원하도록 기업에 압력을 넣은 사례도 있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보기관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돼 처벌을 받는 일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부는 국정원을 정치사찰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공언한 만큼 과연 그 의지가 지켜질지 두고 볼 일이다. 국회 정보위도 국가안보 예산이 엉뚱하게 전용되거나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국정원 예산 집행에 대한 감시를 보다 철저히 해야 한다. 이것이 ‘안풍 사건’ 판결이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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