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족]아버지가 가르치는 전문교육

  • 입력 2003년 8월 26일 16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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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갤러리 시몬을 찾은 원종배씨의 외동딸 열매는 “어렸을 때는 여기서 놀면서 그림을 실컷 보았다”고 말한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엄마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 갤러리 시몬을 찾은 원종배씨의 외동딸 열매는 “어렸을 때는 여기서 놀면서 그림을 실컷 보았다”고 말한다.김미옥기자 salt@donga.com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그들 대부분이 아버지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교감을 가졌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 아버지가 자신의 전문분야를 딸에게 직접 가르친다면? 더구나 그것이 지식이 아니라 대화하고 교감하는 것 자체라면? 아나운서 원종배씨(49)와 아트디렉터 홍동원씨(42)가 딸들의 말하기 교육, 그림 교육에 대해 털어놓았다. 두 아버지는 소위 요즘 ‘유행하는’ 사교육에 그리 열성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교육은 ‘가정교육’ ‘인성교육’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른 아버지들이 참고할만한 사항들이 많았다.》

■아나운서 원종배씨의 말하기 교육

"말하기 교육은 화술을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말 속에 담긴 인격이 더 중요하지요. 그래서 인격교육 가정교육이 먼저입니다. 그 뒤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고 말에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는 것, 이것이 말하기 교육이지요.”

원씨가 말하기 교육 하면 연설이나 웅변을 떠올리는 학부모들에게 하는 말이다. 더 나아가 그는 말이 소리언어가 아니라 사고언어라고 말한다. 방송을 진행하거나 강연회에서 아이들과 얘기해보면 말하기 능력에서 편차가 크다는 것. 부모가 관심을 갖고 아이와 얘기를 나누고 바른 언어습관을 들여 주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왕따’가 되는 아이들 유형을 보면 크게 ‘자신을 표현 못하는 아이’와 ‘잘난 체 하는 아이’로 나뉜다. 친구들은 물론 전자를 바보로 인식하고 후자를 “입만 까져 가지고”라며 보기 싫어한다. 아이들의 말에도 생각의 깊이가 담겨야하고 잘난 아이도 남을 배려해야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아이들과 놀이를 통해 말하기 교육을 해보라고 권한다. 온 가족이 모여 주제를 정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1분 스피치’, 3행시 짓기, 낱말 알아맞히기는 그가 외동딸 열매(9 ·초등 3년)와 자주 하는 놀이다.

“열매와 말놀이를 하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것은 아이들은 모르는 낱말을 가르쳐주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낱말을 써먹기 위해 기다리지요. 이런 아이를 위해 매번 같은 것을 물어도 100번 다 대답해줘요.”

바쁜 방송생활 중에도 열매와 놀아주는 원씨를 동갑내기 부인 김영빈씨(갤러리 시몬 대표)는 ‘100점짜리 아빠’라고 부른다. 원씨는 열매와 놀아주지만 뭘 하라고 강요하는 법도 없다. 오히려 가능하면 놀려주자는 주의다. 그래서 뭘 배워주는 데도 느리다.

“열매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겠다며 신청서를 내라는 거예요. 열매에게 물었더니 싫다고 하고요. 몇 달 뒤 열매가 바이올린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하겠다고 해요. ‘더 생각해보라’고 몇 번이나 확인하고 허락했지요.”

피아노를 가르칠 때도 몇 번이나 확인하고 가르쳤지만 게으름을 피웠다. 그래서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더니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한 거니까 힘들어도 해야지’라는 대답이 나왔다. 벌써 말에 책임을 느끼도록 하는 말하기 교육이 된 셈이다.

그는 “말은 습관이기 때문에 말하기 교육은 어른이 되면 늦는다”며 말하기 교육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아이로 키워라’(아이북)를 펴내기도 했다.

남동생과 언니 사이에 낀 홍동원씨의 둘째딸 승윤이가 모처럼 엄마와 아빠를 독차지하고 서울 필동 한옥마을까지 나들이한 기쁨에 활짝 웃고 있다. 김미옥기자 salt@donga.com

■아트디렉터 홍동원씨의 그리기 교육

"어느 아이든지 그림을 잘 그립니다. 아이의 그림 그리기에 간섭해 그림을 망가뜨리는 것이 어른들이지요. 아이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생각이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둘째 승윤이(8·초등 2년)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려 보여주곤 했다. 처음에는 낙서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아이의 생각이 담겨 갔다. 홍씨는 이들 그림을 앨범에 사진 모으듯 모았다.

첫째딸(10·초등 4년) 역시 낙서차원의 그림을 그렸지만 유치원에 가서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웠고 학교에서 상까지 받고 난 뒤론 홍씨가 그림 교육을 거들 여지는 없었다.

“첫째아이의 교육에 대한 엄마의 열성은 요즘 보통 엄마들이 그러하듯 가히 초인적이었습니다. 대신 둘째는 사교육의 치외법권에 있어 함께 그림을 그릴 기회가 많았고요. 나의 칭찬에 신이 난 승윤이는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요.”

홍씨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승윤이가 어려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씩이나 떠들더니 유치원에 들어간 뒤 이야기를 점점 하지 않아 아쉬웠다고. 그는 유치원이건 학원이건 학교건 교사들이 아이들 그림을 지도한다며 정형화시켜 버려 개성과 이야기를 빼앗는다고 지적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부인 성낙경씨(36)는 승윤이가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인데도 그림을 완성하지 못해 상을 한 번도 못받아 속상해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그림을 다 그렸다고 해서 나도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면 그 그림은 자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 홍씨의 생각. 요즘 아이들이 미대를 졸업했으면서도 주제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리지 못하는 것도 자기 그림을 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최근 자신의 경험을 담은 그림교육서 ‘연필이 쑥쑥 자라요’(아이북)를 펴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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