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체불임금 1546억 “추석 귀향때 일자리 찾아야할 판”

  • 입력 2003년 8월 21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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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을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전모씨(38)는 최근 큰딸(9)에게 피아노 교습을 중단하도록 했다. 지난해 말부터 슬금슬금 밀리던 월급이 올해 4월부터 아예 끊겨 단돈 몇 만원이 아쉬운 처지가 됐기 때문. 그는 “칭얼대는 딸아이 얼굴 보기가 민망하다. 아빠가 그런 것 하나 제대로 못해주고…”라며 고개를 숙였다.

전씨가 지금까지 받지 못한 돈은 모두 1300만원가량. 지금까지는 모아둔 돈으로 몇 달 버텼지만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전씨는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 추석이 다가오니 더욱 처량해진다”며 “돈을 못 받으면 고향에 가서 밥벌이 할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의류업체에서 재봉사로 일했던 김모씨(51·여)는 올 7월 말 회사를 그만뒀다. 매달 80만원씩 나오던 월급이 올해 봄부터 절반으로 뚝 줄어들더니 그나마도 3개월 동안 체불됐기 때문.

김씨는 대학생인 두 아들에게 매달 몇 만원씩이라도 쥐어주던 용돈도 최근 완전히 끊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회사는 3개월치 체불임금을 9월 10일까지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회사 사정이 워낙 어려워 그마저 불투명하다.

김씨는 “그 돈만 받으면 추석 때 버젓한 음식상이라도 차릴 수 있지만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음식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할 판”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듯 경기침체의 여파로 추석을 앞두고도 월급을 받지 못하는 ‘체불임금 근로자’가 급증하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된 체불임금은 1546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의 473억원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늘어났다.

대개 근로자들이 체불을 참아낼 수 있는 ‘마지노선’은 3개월가량인 것으로 여겨진다. 올해의 경우 3개월 전인 5월의 체불임금이 4월에 비해 500여억원이나 폭증했다. 이 때문에 올해 추석의 체불임금 후유증은 예년에 비해 훨씬 심각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일 고건 총리 주재로 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체불임금 근로자 생계안정 지원 △중소기업 신용보증 및 자금지원 등을 통해 체불임금 근로자와 사업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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