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교수 특강 "침팬지가 진화한다고 사람 안됩니다"

  • 입력 2003년 8월 2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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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여름특강 ‘진화와 21세기’ 수강생은 대부분 인문사회과학 연구원들이다. 진화론은 생물학을 넘어 사회변화와 미래예측에도 주요한 발상을 제공한다. -권주훈기자
최재천 교수의 여름특강 ‘진화와 21세기’ 수강생은 대부분 인문사회과학 연구원들이다. 진화론은 생물학을 넘어 사회변화와 미래예측에도 주요한 발상을 제공한다. -권주훈기자
“진화 얘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묻습니다. ‘침팬지를 오래 놔두면 사람이 되느냐’고요. 종의 변화만을 진화라고 이해하는 것이지요.”

프로젝터가 스크린에 비추는 화면이 바뀌어 침팬지와 어린이가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물론 저애(침팬지)가 아무리 기다려도 이애(어린이)처럼 되기는 어렵겠지요.”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5분에 한 번꼴로 강의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원남동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실에서 이 단체가 주최한 여름특강 첫 순서 ‘진화와 21세기’. 20여명의 수강생들 대부분은 인문사회과학 연구원들이었다.

“세대간에 형태와 행동에 변화가 있다면 그것도 진화입니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 체격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지요. 그건 진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유전자 수준에서 변화가 있어야 진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29일까지 모두 6회로 짜여진 연속특강의 첫 시간은 진화에 대한 기본개념 설명이 주를 이뤘다. 최 교수는 특히 진화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개체들 사이에 변이가 존재해야겠지요. 플라톤은 변이가 이데아의 불완전한 투영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다윈은 변이 자체가 바로 변화를 일으키는 실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훌륭한 것’입니다.”

최 교수는 비전공자들을 위해 ‘변방’의 강의실을 찾은 이유를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라고 설명했다.

“흔히 진화와 진보를 혼동하는데 진화 자체에는 목적성도, 방향성도 없어요. 생물들은 나은 미래를 위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뿐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무너질 수 있어도 진화는 멈추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진화하고 있지요.”

최 교수에게 강의를 청한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고미숙 박사(국문학)는 “인문학도로서 근대적 인간주의(humanism)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 진화론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이보그의 출현 등 ‘인간’이라는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인간을 다시 정의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인간 밖의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범위를 넘어 생명현상의 변이라는 커다란 관점에서 인간의 진화를 이해하는….”

최 교수 역시 ‘서구 생물학계에서 다윈 진화론의 재인식 움직임’을 지적했다.

“하나의 생명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왜 다리가 안 나오고 날개가 나왔는지, 매 순간 이 길을 택하지 않고 저 길을 간 이유를 알아내려면 진화론을 이해해야 하지요.” 02-3673-1125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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