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이 좋아졌어요" 이화여대 '여고생 여름과학 캠프'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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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리고 있는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캠프에 참가한 여고생들이 6일 이 대학 종합과학관 실험실에서 실험 실습을 하고 있다. -김미옥기자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리고 있는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캠프에 참가한 여고생들이 6일 이 대학 종합과학관 실험실에서 실험 실습을 하고 있다. -김미옥기자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실험실. 이 대학 남원우(南元祐·화학전공) 교수의 지도로 5명의 여고생이 대학원생 조교와 함께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실험 주제는 인체 내에서 전이금속 화합물의 반응을 이해하는 것. 학생들은 고교에서는 다뤄보지 못한 고성능 실험 장비로 실험을 하며 해당 분야 전문가인 남 교수의 설명을 직접 듣는 것이 신기한 듯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김빛나라양(16·대전 관저고 1년)은 “평소에도 과학 과목에 흥미가 있었지만 캠프에 참가한 뒤 과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여성부 여성발전기금의 도움을 받아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여성 인력 진출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개최한 ‘여학생 과학캠프’에 참여한 학생들.

전국에서 수학과 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고교 1, 2년 여학생 75명이 선발돼 5일부터 8일까지 이화여대 기숙사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실험과 실습을 통해 과학을 배우고 있다.

캠프를 주관하는 이화여대는 학생 5명당 교수 1명과 대학원생, 대학생을 연결해 이들의 교육과 생활지도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여선희양(경기 동화고 2년)은 “의대에 지원해야 할지, 이공계 학과에 지원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며 “이번 캠프를 통해 적성을 파악한 뒤 진로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방학에도 여학생 과학캠프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남 교수는 “캠프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관찰, 사고하고 토론하면서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된다”며 “지난해에도 캠프가 끝난 뒤 많은 학생들이 과학자가 되겠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보였다”고 말했다.

‘미래의 퀴리 부인을 키우자.’

지식정보시대를 맞아 고급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는 일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만큼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섬세하고 정밀한 능력을 요구하는 21세기 과학의 특성을 고려할 때 감성과 창의성, 유연성 면에서 탁월한 여성들을 과학기술 인력으로 양성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공포되면서 여성 과학기술인을 육성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마련된 상태.

그러나 이공계에 진학하는 여학생 수가 아직 남학생에 비해 크게 적고 여성이 진출할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의 문호도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국내 이공계 여성 진출 저조=과학기술연감에 따르면 2003년 1월 현재 국내 대학, 연구소, 기업 등에서 근무하는 과학기술계 인력 16만1645명 가운데 여성은 2만6046명으로 16.1%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의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전체의 20∼30%를 차지하는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

국내 여고생들도 대학에 진학할 때 이공계 학과를 선호하지 않고 있다. 200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자연계를 선택한 여학생은 17%로 인문계(62%)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남학생의 경우 자연계와 인문계의 비율이 39 대 45였다.

이공계에 진학하는 여학생 가운데 대부분이 이학계열을 선택하고 있어 공학계열의 여학생 확보율은 더욱 열악하다.

▽여학생은 과학에 약한가=대체로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수학과 과학에 약하고 국어나 영어 과목에 강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1999년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에서 실시한 국제비교연구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과학 교과의 남녀 학생간 차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이 19점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의 경우 21점으로 남학생이 과학 과목을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는 이공계 분야가 대체로 남성 중심이어서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과학 과목에 관심을 덜 갖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정부 유인책=이에 따라 정부는 우수한 여학생들을 이공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갖가지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여학생들의 과학 분야 진출을 유도하기 위해 전국 24개 중고교를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 프로그램 시범학교’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과학기술부는 지난달 여학생 비율을 높이는 이공계 대학에 연구 장려금을 제공하고 우수한 이공계 여대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제정했다.

과기부는 이를 통해 국내 이공계 대학의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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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과학캠프 주관 이혜숙교수 인터뷰▼

“영국은 여성 과학자에 대한 지원과 여성 친화적인 과학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30년 만에 여성 과학자의 비율을 전체의 10%대에서 35%대로 높였습니다. 우리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여학생 과학캠프를 주관하고 있는 이화여대 이혜숙(李惠淑·수학과 교수·사진) WISE 거점 센터장은 6일 “21세기의 과학은 나노기술, 생명공학, 정보기술 등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WISE란 ‘Women Into Science & Engineering’의 약자로 이공계열에 재능이 있는 우수한 여학생들과 이들의 역할 모델이 되는 여성 과학자들을 1 대 1로 연결해 지원하는 프로그램.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재단, 이화여대가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이 교수는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이공계 과목에 대한 적성이 부족하다는 속설은 잘못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단지 그동안의 과학 교육이 여성보다는 남성의 특성에 맞게 실시돼 왔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나돌고 있으며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여학생이 더욱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여학생의 경우 과학학습을 실제 생활과 연결시킬 때 성취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학생에게 맞는 과학교육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야 합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공계 여학생들이 졸업 후 안정적인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여성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수요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여성 연구원은 전체의 6.9%, 이공계열 대학교수 중에서 여성이 6%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이를 선진국 수준인 20% 이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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