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피폭자 건강수첩' 있으나 마나

  • 입력 2003년 8월 5일 0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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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岐)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사망자 21만여명 가운데 한국인도 4만여명이 숨지고 3만여명은 다쳤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피해자들은 58년이 지난 지금도 ‘원폭’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원폭 피해자들이 소지한 ‘피폭자 건강 수첩’은 해방된 지 58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이 일본법의 적용을 받는 비정상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건강 수첩은 일본의 피폭자 원호법에 따라 70년대부터 한국에 거주하는 피폭자들에게도 발급됐다. 현재 전국에 생존한 2200여명(등록자 기준) 피폭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이 수첩을 발급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2월 곽귀훈(郭貴勳·경기 성남시)씨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한 것을 계기로 올해부터 기존의 무료진료와 함께 건강관리 수당(월 3만 4030엔)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무료 진료를 받기 위해 일본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얘기. 히로시마시가 발급한 수첩을 15년째 가지고 있는 김성용(金聖龍·76·대구 달서구 두류동)씨는 “오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은데다 말까지 잘 통하지 않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아 일본에서 진료하기는 어렵다”며 “수당이라도 받을 기대감에 소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관리 수당도 실제 지급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한국 피해자들에게 4월부터 수당을 지급한다고 통보했지만 8월 현재까지 전혀 지급되지 않고 있는 것.

수당 지급 판결 이후 이 수첩을 발급받으려는 국내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본은 피해자 2명의 보증을 요구하고 11가지 심의항목을 넣는 등 절차를 까다롭게 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정부는 피폭자 건강 수첩 발급에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고 개인에 맡겨두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장 이호경(李鎬景·64)씨는 “피해자들이 수당이라도 받을 마음으로 가해자 국가에 가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신청을 하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난다”며 “우리가 어느 나라 국민인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원폭피해자협회 대구경북지부는 6일 대구 동구 신천동 협회 사무실에서 원폭으로 숨진 한국인을 위한 위령제를 올린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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