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칼럼]대학을 나무라기에 앞서

입력 2003-07-25 18:39수정 2009-10-1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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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등학교에는 성적이 특출한 학생이 없다고 한다. 전교 1등이라고 해 봐야 수능시험 모의고사 성적이 400점 만점에 300점을 조금 넘는 수준이고 교육 여건이 좋다는 지역의 학교가 그나마 나은 형편이다. 고득점자가 거의 없는 가운데 모두가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 재기’식 점수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입시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문제는 기초학력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대충 시간을 보내고 대부분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다. 고등학교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학습과정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기초가 안 되어 있으니 점수가 올라갈 리 없다.”

▼고득점자가 없는 고교 ▼

어떤 사람들은 수능시험이 기초학력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학교마다 ‘내신 부풀리기’가 횡행하는 마당에 그래도 믿을 만한 기준은 수능 점수뿐이다. 수능시험에서 고득점 학생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최상위권 학생층의 두께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고교생들의 기초학력은 대학들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대는 해마다 모든 신입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시험을 치르게 한다. 대학과정을 이수하는 데 필요한 기초학력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지난 몇 년간의 시험 결과는 참담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어는 고급영어를 수강할 수 없을 정도이고 수학도 낙제점이 수두룩하다. 더 심각한 것은 글쓰기와 말하기, 토론이다. 학생들에게 리포트 숙제를 내주기에 앞서 글쓰기부터 가르쳐야 하는 실정이다.

최근 서울대가 ‘학부대학’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 1, 2학년 때에는 무조건 기초 교양과목만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대학측은 외국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내세우지만 그 ‘속사정’은 신입생들의 허약한 기초학력에 대한 고민이다. 기초가 모자란 학생들에게 전공을 가르쳐 봐야 소용이 없으니 일단 대학 2년간 ‘기본기’를 가르치고 나서 전공 공부로 들어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엘리트 교육에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다.

‘동북아 경제중심’과 ‘국민소득 2만달러’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동북아 경제중심’이 되려면 우선 우리의 핵심 인재들이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도 태평하고 여유가 만만하다.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 이상으로 대학교육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두 명문대가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여 대학 수준을 한 단계 높였고 과감한 대학 통폐합도 성과를 거뒀다. 일본도 대대적인 대학 개혁에 착수했다. 국립대학을 법인화하고 10개 국립대학을 구조조정을 통해 줄이기로 했다. 이에 비해 지지부진한 우리의 대학 개혁은 구호만 요란할 뿐이다.

하지만 대학을 나무라기에 앞서 따져볼 게 있다. 엘리트 양성의 실패에 어느 쪽 책임이 큰가 하는 점이다. ‘하향 평준화’를 양산한 고등학교까지의 학교들과 교육시스템이 더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대학 개혁을 제대로 못해 핵심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 대학의 책임이 더 큰 것인가. 요즘처럼 기초학력 부실 문제가 심각할 때에는 대학 이전의 교육에 대해 큰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 경제중심’ 되려면 ▼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큰 방향은 고등학교까지는 ‘공공성’을, 대학부터는 ‘경쟁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트 교육에서 대학 이후에만 ‘경쟁력’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도외시하는 일이다. 교육경쟁력이 바로 국력을 뜻하는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그동안 교육정책은 오로지 입시 경쟁을 잡기만 하면 된다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 왔다. 교육의 목표는 입시 과열을 완화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사람과 인재를 키우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공부 잘하는 학생을 배려하는 데 인색한 측면이 없지 않다. 앞으로는 이들을 칭찬하고 더욱 잘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동북아 경제중심’과 ‘소득 2만달러’의 꿈은 그런 기반 위에서 가능할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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