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칼럼]NEIS 싸움의 진짜 이유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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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뭔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국이 떠들썩한 NEIS 논쟁이 핵심을 모른 채 진행되는 느낌이다. 자고나면 말이 바뀌는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NEIS에 대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설명해 놓은 게 있다. NEIS는 ‘큰 은행금고’이고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은 ‘작은 금고’라는 것이다.

은행금고 안에 모든 물건을 보관하면 안전하기는 하지만 일단 도둑이 들면 몽땅 털리게 된다. 반면에 작은 금고 여러 곳에 물건을 나눠 놓으면 도둑이 노리긴 쉽지만 털릴 경우 피해는 작다. NEIS는 교육부에, CS는 학교별로 설치되어 있다. 그 안에 보관되는 것은 학교생활기록부 건강기록부 성적표 등이다. 이런 기록의 보관 장소를 어디로 정하느냐를 따지는 논쟁이다.

▼겉으론 학생인권 속으론 교사권익 ▼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어 정부는 CS라는 ‘작은 금고’에 보관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전교조는 학생 인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일단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인권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일부의 찬사에 어울리게 인권을 중시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권위가 권고한 CS는 NEIS보다 보안이 허술하다. 도둑이 들어 물건(정보)을 빼내가기가 훨씬 쉬운 것이다. 인권위는 NEIS의 인권침해 소지에 대해서만 판단했다고 말하지만 친절하게도 CS를 사용하라고 방향까지 정해준 것은 CS로 인해 발생하는 더 큰 인권 침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제기한 전교조가 평소 학생 인권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온 단체였을까. 학생 인권에서 정보 인권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시급한 게 널려 있다. 새벽별 보고 등교하는 ‘0교시 수업’부터 전혀 자율선택이 아닌 ‘야자(야간자율학습)’까지 학생들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학습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학생 인권을 보호하려면 이런 수렁에서부터 빨리 건져내야 한다.

아직도 횡행하는 교사들의 체벌이나 집단따돌림, 학교폭력 문제도 학생들 피부에 절실하게 와 닿는 인권 문제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입시지옥일 것이다. 입시 스트레스는 물론 정신질환에다 심지어 자살까지, 입시 과열로 인한 이 땅의 비극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개선되지 않고 있거나 악화되고 있는데도 전교조가 정보 인권부터 외치는 것은 정말 순수한 동기에서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전교조가 99년 합법화 이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노력해 왔다면 그들이 내건 ‘우리 아이들 인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아쉽게도 전교조는 자신들의 권익 찾기에 더 골몰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태는 결국 교단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이다. ‘인권’이니 ‘화해’니 명분 있는 말들이 겉으로 오가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서로 상대에게 밀리지 않으려는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 각자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안간힘이 엿보인다. 정작 중요한 학생과 학생 인권은 밖으로 밀려나 있다.

정부의 결정적인 실책은 이런 이해 다툼에서 ‘정치적 결단’에 따라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것이 ‘코드’가 같기 때문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교단 내부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고, 어느 것이 딱히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는 NEIS 문제에 한 쪽 편을 든 것은 이 정부가 교육정책에서도 영락없는 아마추어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서승목 교장 자살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부글거리던 교단 갈등에 불을 댕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계 힘겨루기에 정부 말려들어 ▼

김대중 전임 정부를 돌이켜볼 때 통치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교육정책의 무리한 추진과 혼란 때문이었다. 어떤 정치적 현안보다도 결정적으로 민심이 정권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교육 분야는 NEIS 문제 하나에 매달려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교육개혁의 시계는 멈춰 섰고 앞으로의 기대도 지금으로선 난망이다. 정부는 조속히 수습에 나서야 한다. 그것은 이번 결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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