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국내 최대 채낚기 어업기지 동빈-구룡포항 르포

  • 입력 2003년 5월 27일 21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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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어(出漁)하면 뭐 합니까. 남는 게 없는데….”

전국 최대 채낚기 어업기지인 경북 포항 동빈항과 구룡포항. 3월부터 6월까지는 꽁치 성어기이지만 어선들은 바다 대신 항구에 묶여있다. 선장들은 선원이 거의 없는 빈 배로 바다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벌써 석 달째다.

포항 동빈항의 채낚기 어선 40여척, 구룡포항의 100여척 가운데 꽁치를 잡으러 나가는 어선은 10%에 불과하다. 이것도 그냥 있자니 답답해서 출어한다는 게 어민들의 이야기다. 지난해 이맘때는 꽁치잡이로 수천만원씩 어획고를 올렸던 어민들은 올해 경우 수입이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월말 경 시작되는 오징어 잡이에도 이같은 상황이 이어질까 걱정입니다. 꽁치잡이는 그렇다치더라도 오징어까지 제대로 잡지 못하면 당장 생존이 문제거든요. 바다에 고기는 줄어드는데 어민들끼리 경쟁은 심해져 서로 마음이 갈라지기도 하고 경비는 더 들어 답답한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포항채낚기선장협회 김칠이(金七伊) 회장은 “한마디로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동빈항에 묶어 둔 자신의 채낚기 어선 29t 대승호에서 집어등(集魚燈·불빛을 보고 모이는 고기를 잡기 위해 켜는 전등)을 만지며 답답한 속을 털어놓았다.

채낚기 어선이 바다 대신 항구를 지키고 있는 까닭은 갈수록 어군형성이 부진한데다 조업에 필요한 기름(경유) 값이 만만찮기 때문. 현재 면세 경유 1드럼(200리터)에 6만 1000원 선으로 지난해 4만 8000원 선에 비해 꽤 올랐다. 육지에서 60∼70km 떨어진 동해에서 조업을 할 경우 하루 평균 8드럼 가량 들어간다.

김 회장 경우 지난해 이맘때는 꽁치잡이로 5000만원 가량의 어획고를 올렸지만 올해는 0원이다. 그는 “조업을 나갈 경우 연료뿐 아니라 선원 인건비, 얼음 구입비 등에도 상당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차라리 조업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채낚기 어민들이 더 걱정하는 것은 6월부터 시작하는 오징어 잡이.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집어등의 밝기(광력·光力)를 규정대로 지켜야 하는데 이를 어기는 어민이 적지 않아 어민 끼리 다툼도 잦다.

해양수산부가 고시한 집어등 밝기는 △10t 미만: 100kw 이하 △10t∼20t: 130kw 이하 △20t∼50t: 180kw 이하 △50t∼70t: 200kw 이하 △70t 이상: 210kw 이하이다.

일부 어민들은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욕심으로 규정보다 더 밝게 불을 밝혀 조업을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광력규정을 어기는 어민에 대해 단속은 거의 없다. 구룡포채낚기선주협회 연규식(延圭植·44) 회장은 “집어등 밝기는 기름값과 직결되는데도 어민들이 출혈경쟁을 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규정대로 광력을 사용하고 이를 어기면 강력히 단속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포항=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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