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스케치]월드컵공원 변신 난지도 1년

  • 입력 2003년 5월 9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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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드컵공원 내 하늘공원. 생태공간, 바람개비 풍력발전기, 한강이 보이는 전망 등 친환경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안철민기자
서울 월드컵공원 내 하늘공원. 생태공간, 바람개비 풍력발전기, 한강이 보이는 전망 등 친환경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안철민기자
《수백년 뒤 고고학자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을 발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 유물의 해석을 놓고 학자들이 논란을 벌일지도 모른다.》

쓰레기산이었던 난지도(蘭芝島)가 월드컵공원으로 변신한 지 1년. 7일 오후 3시 월드컵공원 내 98m 높이의 하늘공원에서 서울 동작구 흑석동 은로초등학교 학생 40여명이 탄성을 질렀다.

“와, 바람개비다.”

“아냐, 풍차야. 꼭 네덜란드에 온 것 같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전시관 내부. 난지도 쓰레기산을 절개한 단면 모형, 쓰레기의 변천을 시대순으로 보여주는 전시 코너 등을 통해 쓰레기의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안철민기자

풍력발전기인 바람개비가 있는 풍경만으로도 이곳은 이국적이다. 한강이 보이는 전망 역시 낭만적이다. 그야말로 생태와 문화가 숨쉬는 곳.

월드컵공원관리사업소 김선배(金先培·30)씨가 어린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으악새가 어떻게 우나요?”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들, “으악이요” 하면서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으악새는 새가 아니고 억새풀이에요. 저기 억새가 보이죠? 옛날엔 여기에 억새가 많았답니다. 그런데 1978년부터 쓰레기장으로 변했죠. 여러분의 발 밑 1.5m 깊이엔 지금도 쓰레기가 묻혀 있답니다.”

“정말이요?”

아이들이 난지도의 내력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난지도는 원래 난초와 영지가 자라던 아름다운 곳이었다. 꽃이 많아 ‘꽃섬’, 오리가 물에 떠있는 모습이어서 ‘오리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조선 지도인 수선전도(首善全圖)엔 ‘꽃이 핀 섬’이라는 뜻의 중초도(中草島)로 기록돼 있다.

1960, 70년대 난지도는 억새가 우거져 데이트와 영화촬영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전국 땅콩 생산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땅콩 농사가 성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난지도가 쓰레기처리장으로 변했다. 경기 김포에 쓰레기매립지가 생긴 93년까지 82만3000여평에 9200만t의 쓰레기가 쌓였고 그 높이가 98m에 달했다.

지금은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전시관 등으로 구성된 월드컵공원이다. 황조롱이 솔부엉이 수리부엉이 소쩍새(이상 조류) 왕고들빼기 비비추 며느리배꼽(이상 야생식물) 소금쟁이 물방개 물장군(이상 곤충) 등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생명이 찾아왔다.

이날 오후 4시경 어린이들은 하늘공원에서 내려와 평화의공원 옆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난지도 쓰레기산을 절개한 단면모형과 난지도 쓰레기의 변천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유심히 살폈다.

벌꿀표 약과, 뉴 뽀빠이, 김성동 소설 ‘만다라’, 조용필 1집, 비사표 성냥, 삼양라면…. 그건 난지도의 영욕의 역사, 난지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었다.

어린이들의 유쾌한 재잘거림이 이어졌다.

“비사표 성냥? 만다라?”

“너는 쓰레기인 것도 모르냐.”

“야, 쓰레기가 아니라 소설이래잖아.”

한 어린이의 말처럼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생활의 역사다. 훗날 서울 사람들의 삶을 밝혀줄 중요한 유물이 될 것이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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