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가야 영어 는다”…초등생 해외연수 붐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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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앞두고 영어 공부를 위해 벌써부터 해외여행을 예약하는 초등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중산층에서 이뤄지던 어린이 해외 영어연수가 해가 갈수록 확산돼 최근에는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 ‘영어연수 강박증’ 현상마저 생기고 있는 양상이다.》

▽실태=본보 취재팀이 1일 서울 강북의 A사립초등학교 5학년 5개반 180명 전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여름에 해외로 출국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학생이 1개반 36명 중 10명꼴로 학년 전체에서 모두 51명(28%)이나 됐다. 이 학교는 부유층보다는 중간 계층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곳이다.

이 학교 학부모 김모씨(40·여)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해외연수’라는 주제의 대화에 끼지 못하면 상대도 안 해줄 정도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며 “이미 비자신청을 마쳤고, 학교의 양해를 얻어 6월 초부터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조기 영어연수 붐이 뿌리를 내린 서울 강남지역 6개 초등학교를 조사한 결과 3, 4월에 학교당 20∼40명이 미국 비자신청에 필요한 재학증명서를 발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미국 비자를 갖고 있는 학생까지 감안하면 절반에 가까운 학생이 ‘여행 대기’라는 것이 한 학교 관계자의 귀띔이다.

▽일반화된 초등학생 연수=초등학생의 방학 중 해외연수가 늘면서 유학원도 성업 중이다. 유학원들은 영어 청취력과 회화능력 향상을 위한 이른바 ‘귀뚫기 캠프’ ‘말하기 캠프’는 물론 농장이나 자연체험에 주안점을 둔 ‘문화캠프’, 골프 등 고급스포츠를 익히는 ‘체육캠프’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있다. 비용도 100만원대부터 6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서울 U유학원 김성욱 이사(35)는 “전국 유학원이 여름방학 때 초등학생 8000여명을 해외로 내보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어학연수보다는 외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기 위한 ‘맛보기 여행’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초등학교는 체험교육이나 연수를 위해 외국으로 나갈 경우 등교하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하는 기간을 최대 한달로 제한하고 있지만, 이를 초과해 장기 결석을 감수하고 6월부터 조기 출국에 나서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묻지마 출국’의 문제=성균관대 의대 김경희(金敬喜·정신과) 교수는 “학부모들은 자녀가 ‘외국물’을 최대한 많이 접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겉치레 의식’과 남들이 다 보내는데 나만 보내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떨어진다는 ‘강박심리’에 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양대 한문섭(韓文燮·영어교육) 교수는 “초등학생들이 외국생활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견문을 넓히는 긍정적 효과는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초등생들은 단기간에 배운 것은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학부모 최모씨(43·경기 과천시)도 “지난해 초등 6학년인 딸을 방학 때 영어권에 사는 친척에게 맡겨보았지만 집과 슈퍼마켓, 놀이시설만 오갔고 체재비도 의외로 많이 들었다”며 “언어연수를 기대했지만 결국 경험쌓기 수준의 여행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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