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 한달]재난기관 자동연락시스템 아직도…

  • 입력 2003년 3월 16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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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대구지하철 참사’는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많다. 화재가 발생하기 전후 상황에서 온갖 미숙하고 어이없는 대처가 사고를 엄청나게 키웠고 사후 대책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사고는 적지 않은 교훈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사안들을 남기고 있다.

▽있으나마나한 안전규칙=대구지하철공사의 사훈(社訓) 가운데 첫번째는 ‘절대 안전’이지만 직원들 중 이 사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정도로 안전은 뒷전이었다. 공사의 ‘방재관리계획서’에는 비상시 대비해야 할 행동요령을 전동차 안 화재는 물론 독가스 살포 대비훈련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문서상의 규정일 뿐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번 참사가 남긴 반면교사 중 하나.

대구지하철 참사 시민사회단체대책위원회가 15일 전문기관에 의뢰해 대구지하철공사 직원 127명을 대상으로 지하철 안전대책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안전대책이 매우 충분하다’는 대답은 2.4%에 불과했다. 특히 기관사 등 승무 소속 응답자들은 전부 ‘부족하다’고 답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번 참사에 따른 대구시 전체의 손실을 7000억원가량으로 계산했다. 예산 타령으로 안전에 대한 훈련과 비용 투입을 소홀히 한 결과 수백배의 손실과 인명피해를 당한 것이다.

▽기본도 무시한 사후 처리=경찰과 대구시사고대책본부는 ‘사고현장 보존’이라는 기본을 완전히 무시했다. 경찰은 하루 만에 참사 현장에 대한 감식을 끝냈고, 지하철공사는 참사 당일 불탄 전동차를 차량기지로 끌고 갔다.

다음날 지하철공사와 대구시대책본부 등은 현장에 있던 잔재물을 300여개의 포대에 담아 차량기지로 옮겼다. 뒤늦게 이 포대 안에서 유족과 시민단체들이 유골 일부와 희생자들의 유류품을 발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이 때문에 유족은 대구시대책본부와 대화를 단절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은 별도로 현장조사에 나서는 등 사고수습 과정이 질서를 잃었다.

▽따로 움직이는 재난구조기관=소방서 경찰서 응급의료센터 등 재난관리기관끼리 유기적인 협조가 떨어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평소 대형참사에 대한 비상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아 막상 실제 사고가 발생하자 재난관리기관끼리 정보공유가 안돼 우왕좌왕하는 결과를 불렀다. 유독연기가 뿜어나와 접근이 어려운 상황에서 소방서와 지하철공사는 접근로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나누지 못했다.

경찰과 응급의료센터도 따로 움직였다. 대형사고 발생시 소방서 경찰 병원이 자동연락체계를 구축해 입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 이번 사고가 남긴 교훈이다.

▽개인 방재능력도 시급하다=이번 사고를 계기로 개인 방재능력을 키우는 노력도 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080호 전동차에 탔다가 빠져나온 한 대학생은 “연기가 퍼지자 곧바로 바닥에 엎드렸다가 빨리 빠져나왔다”며 “연기가 차 승객들이 기침을 하는데도 일부 여성들은 휴대전화를 하느라 연기를 마셨다”고 말했다. 평소 재난대비훈련을 통해 간단한 요령이라도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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