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요구로 첫 개인파산 선고

  • 입력 2003년 3월 3일 0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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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현직 재단이사장이 법원으로부터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개인파산을 선고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지법 파산부 윤강열(尹綱悅) 판사는 “최근 충남 K대학을 운영하는 I재단 이사장 L씨에 대한 파산선고를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사회지도층 인사가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파산선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제도가 악덕 채무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윤 판사는 결정문에서 “L씨가 대학 재단이사장이긴 하지만 본인 명의의 재산이 전혀 없는 데다 5000만원도 값을 능력이 없다고 해 파산선고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 판사는 또 “최근 들어 재산을 은닉했다고 의심되는 채무자들에 대한 채권자들의 파산 신청이 늘고 있다”며 “자격상실 등을 무기로 빚을 받아 내거나 빚을 지고도 잘사는 채무자들에 대한 ‘보복’차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검찰은 14.3%의 저조한 추징금 납부 실적을 보이고 있는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에 대해 이 방안을 활용할지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97년 4월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원이 확정된 전 전 대통령은 6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일 현재 321억여원만 국가에 납부한 상태.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신원증명서에 ‘파산자’임이 기재되고 금융거래 제한은 물론 공무원 담임권 및 주식회사 임원, 변호사, 의사 자격 등 각종 자격이 박탈되며 파산법에는 파산자에 대해 주거제한이나 통신제한까지 규정하고 있다. L씨도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재단이사장 자격을 상실했다.

서울지법 관계자는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내는 파산신청은 지난해부터 생기기 시작해 지난해 500여건의 전체 개인파산 신청건수 중 20∼30건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남모씨는 지난해 7월 “L씨가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에 살면서 고급차를 굴리는 등 부유한 생활을 하면서도 5000여만원을 갚지 않고 있다”며 L씨에 대한 파산신청을 서울지법에 냈다.

채권자가 파산신청을 낼 경우 자격상실 등을 두려워하는 채무자의 변제 약속을 통해 신청을 철회토록 하는 게 상례지만 L씨 사건의 경우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파산선고가 내려졌다.

충남도의원을 지낸 L씨는 1992년 K대학을 방송영상분야 등 문화산업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 전문대로 키워냈으나 자신의 건설회사가 1995년 부도를 내는 바람에 40억원대의 채무변제소송이 걸려있다.

한편 I재단은 이날 관련 법규에 따라 L씨가 재단이사장직에서 퇴임했으며 이 사실을 교육인적자원부에 이미 통보했다고 밝혔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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