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채종민교수 "독가스에 의식 잃자 불길 덮친듯"

  • 입력 2003년 2월 28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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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이었다. 전동차에 들어서자 모든 게 헝클어져 있었다. 어떻게 신원을 확인할지 앞이 캄캄했다. 너무 엉망이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 잿더미 속을 한참 들여다보니 조금씩 희생자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한 1080호 전동차에 대한 시신 수습 작업을 주도한 경북대 법의학과 채종민(蔡鍾敏·사진) 교수는 28일 감식과정을 본보 취재팀에 처음 공개했다.

경북대 시신 수습팀은 1080호가 월배차량기지로 옮겨진 18일부터 26일까지 5호 객차의 발굴 작업을 맡아 시체 55구를 찾아냈다. 6호차(63구)에 이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견된 것.

시신 조각을 하나씩 발굴할 때마다 채 교수는 ‘퍼즐풀기’하듯 사고상황을 과학적으로 추론해냈다.

“희생자들이 탈출을 위해 무작정 열차 양끝으로 도망친 것 같다.”

채 교수는 1, 2호차 쪽으로 달려간 승객들은 일부 열린 출입문으로 탈출해 살아날 수 있었지만 5, 6호 차량은 출입문이 닫혀 있어 피해가 컸다고 추정했다. 이 전동차 출입문 근처의 잿더미에는 서로 겹쳐 있는 시신들이 많이 발굴돼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전동차 안은 형광등 파편 등 천장 기물과 내장재 부스러기가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20∼30㎝가량 바닥에 쌓여 있었다. 채 교수는 이를 ‘화장터와 쓰레기장이 합쳐진 듯한 분위기’였다고 했다.

잿더미를 일일이 붓으로 쓸어가며 유골과 유류품을 발굴했다. 섭씨 1000도 이상의 고열에서는 시신이 뒤틀리고 내부에 있는 수분이 끓는 탓에 관절이 폭발하듯 터져 버려 시체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온전하게 시신 한 구를 찾아내기도 어렵다. 시커먼 덩어리가 사람의 유해인지, 인골(人骨)이라면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잿더미에 방사선을 투사해 그 안에 있는 뼈를 확인하기도 했다. 채 교수는 결국 흩어진 뼈와 치아 조각들을 모아 재구성한 뒤 비로소 1구씩 시신을 확인해 나갔다. 치아 감식은 실종자 가족들이 제출한 치과 진료 기록과 발굴한 치아를 비교하는 방법을 쓰게 된다.

5호 차량 출입문 한 곳에서는 시신 밑에서 유리 파편들이 발견됐다. 채 교수는 “승객들이 탈출하기 위해 유리창을 깨뜨렸지만 이 순간 창문으로 유독 가스가 쏟아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팔을 배 아래 깔고 쓰러진 시신들이 많이 발견됐다. 또 이들이 찼던 것으로 보이는 손목시계는 대부분 오전 10시40분에 멈춰 있었다.

채 교수는 “가스에 중독되면서 승객들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10시40분경 불길이 1080호 차량을 덮치며 모든 것을 태워버린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대구=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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