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기자의 메트로 스케치]서울시민안전체험관 탐방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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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안전체험관의 연기 피난 체험실에서 대피훈련을 하고 있는 어린이와 부모들. -권주훈기자
서울시민안전체험관의 연기 피난 체험실에서 대피훈련을 하고 있는 어린이와 부모들. -권주훈기자
20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의 한 건물 2층.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서 20여평 실내 공간이 암흑으로 변했다. 천장에선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불이 난 것이다.

“어, 엄마, 무서워.”

“수진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손 꼭 잡아.”

실내에 있던 20여명은 공포에 휩싸였다.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요란했다. 누군가 문을 열려다 “앗, 뜨거워”라고 외쳤다.

그때 한쪽에서 듬직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하지 마세요. 침착하게, 손수건이나 옷으로 코와 입을 막고 몸을 숙이세요. 뜨거운 문은 위험하니까 열면 안됩니다.”

그렇게 3분 남짓, 공포의 순간이 지나갔다. 20여명은 밖으로 빠져나와 로프와 그물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이건 실제 상황은 아니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정문 옆 서울시민안전체험관에서 실시한 연기 피난 체험의 한 장면이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를 보고 어릴 때부터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아이를 데리고 왔다”는 네살 난 수진이의 어머니 박숙희씨(중랑구 면목동)는 연기 피난 체험실을 나서며 “햇살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곳은 시민이 각종 재난을 체험하고 위기 대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올해 초 서울시가 세운 국내 유일의 재난 체험관. 지하 1층, 지상 3층(약 1800평)에 풍수해 지진 화재 등 20개의 재난 및 구조 체험실을 갖추고 있다. 현재 무료 시범운영 중이며 3월 6일 공식 개관한다. 매일 300여명이 이곳을 찾으며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문의전화가 부쩍 늘었다.

김분순(金粉順) 소방교가 연기 피난 체험을 마친 사람에게 주의사항을 알렸다.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마세요. 전기가 나가 작동이 중단되면 연기에 갇히게 됩니다. 손잡이가 뜨거운 문도 열면 안됩니다. 뜨겁다는 건 문 건너편에 불길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체험실 가운데 가장 실감나는 곳은 ‘연기 피난 체험실’ ‘지진 체험실’ ‘풍수해 체험실’ ‘소화훈련 체험실’ 등.

부엌 겸 거실로 꾸며진 ‘지진 체험실’에선 진도 1∼7의 지진을 경험할 수 있다. 식기와 전등이 떨어지고 벽이 흔들리는 상황을 체험하면서 대피요령을 배운다. 가스밸브를 잠그고 전원을 꺼야 하며 지진으로 인해 문이 뒤틀리면 열리지 않기 때문에 탈출을 위해 출입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 등.

‘풍수해 체험실’에서는 우의와 장화를 신고 들어가 풍수해의 공포를 실감한다. 대형 송풍기와 스프링클러가 초속 10∼50m의 바람과 최대 시간당 300㎜의 비를 뿌리면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다.

이날 재난을 체험한 한 어린이의 등을 다독이며 김 소방교가 말했다.

“너는 이제 어디서든지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이를 지켜본 한 어머니의 말.

“우리가 몰라도 너무 몰랐네요. 소화기 사용법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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