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질환-백혈병등 건강장애인, ‘멀기만 한 통학길’

  • 입력 2003년 1월 20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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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A중학교 3학년 Y양(15)의 아버지(53)는 지금 고민에 빠져있다. 딸의 고교 배정 때문이다. 딸은 7세 때부터 간질을 앓아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일반계 고교에 갈 만한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고민 끝에 겨우 실업계 학교의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통학이 문제였다. 집에서 버스로 40분이나 가야하는 먼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딸이 학교를 다니다 버스에서 정신을 잃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에 가까운 학교 배정을 호소했지만 “일단 입학을 하고 6개월 뒤 전학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다.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서울 용산구 B중학교 3학년 C양(15)의 경우도 마찬가지. 기억력이 감퇴돼 학습능력이 떨어진 C양도 일반계 고등학교에 갈 성적은 되지 않아 시교육청에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해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C양의 아버지(44)와 담임 교사는 시교육청을 찾아가 수차례 울며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C양의 집 부근에는 가까운 실업계 고등학교마저 없었다. 결국 C양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특성화 학교인 미용학교에 진학하기로 했다.

C양의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장애는 없어도 몸 속의 병 때문에 마음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을 배려해줬으면 한다”고 아쉬워했다.

고등학교를 배정받는 철이 올 때면 이처럼 가슴 아픈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은 아니지만 심한 질환 때문에 먼 거리를 통학하기가 고통스러운 학생과 그 부모들이다. 정부는 특수교육진흥법에 따라 신체적 지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원하는 학교에 우선 배정하는 특수교육대상자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러나 장애와 맞먹는 질환을 앓고 있는 학생들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2001년 9월 국회에는 6개월 이상 입원이나 통원치료를 요하는 질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사람을 ‘건강장애인’으로 규정, 특수교육대상자에 포함하도록 하는 특수교육진흥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선천성 심장 신장 질환, 소아당뇨, 백혈병, 간질 등이 포함되어 있지만 2년째인 지금도 통과가 요원한 실정.

개정안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예산집행기관들이 “소수를 위해 별도의 교육 시설을 마련하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현재 C양처럼 건강장애나 다른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우선 배정을 받지 못하는 초중고교생은 전국적으로 약 7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교직원노조 특수교육위원회 도경만(都炅萬) 위원장은 “건강장애인들도 그에 맞는 교육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하루빨리 개정안이 통과돼 교육 여건 및 교육 서비스가 개선돼 이들이 소외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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