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해 저물다

  • 입력 2002년 12월 30일 16시 05분


2002년은 '광화문의 해'였다.

월드컵을 국민축제로 승화하고, 소녀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대통령 당선자를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모였다. 과거 집회 시위에선 볼 수 없던, 평화로운 '군중 에너지'가 광화문을 통해 발산됐다. 광화문을 지켜본 사람들의 말, 그리고 관련된 '숫자'를 통해 한해를 되돌아 본다.

#광화문과 사람들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결승골을 넣을 때, 빌딩 13층에서 내려본 광화문 네거리는 붉은 양탄자의 벌렁거리는 실밥같은 느낌이었어요. 원자탄 폭음을 연상시킨 '오 필승 코리아'의 서라운드 음향, 낯선 포옹…, 광화문의 '현장'은 재방송 안해주나요?" (광화문 동화면세점의 직장인)

"12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혼났어요. 호루라기로 '대∼한민국'을 부는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원이었습니다." (종로경찰서 의무경찰관)

"광화문에서 '노무현짱'을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승리의 허탈감'이 들었어요. 정치는 결국 당장 눈에 보이는 큰 변화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죠." ('노사모' 회원)

"'광장에서 운명을 만났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광화문에서 체험한 카타르시스는 치유와 회복, 또 다른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어야 합니다. 집단의 카타르시스는 마약과 같아 자극의 한계점이 발생하고, 방향성을 잃은 채 더 높은 자극을 원하게 되면 이성(理性)의 힘은 설자리를 잃게됩니다." (정신과 전문의)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외국인 숙박객은 예약할 때 안전문제를 묻곤 했어요. 일대가 교통통제되면서 공항행 리무진 버스가 떠나지 못할 때 그들의 눈엔 불안감이 스쳤어요."(프라자호텔 직원)

"우리민족에게는 영고나 무천, 마당굿처럼 서로 어울려 감정을 표출하고 동료애를 느낀 행사들이 많아요. 광화문은 이를 21세기에 되살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념을 너무 부각한다면 오히려 한국에 대한 배타적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심어주지 않을까요." (경제연구소 연구원)

#광화문과 숫자들

▽240=월드컵 기간 중 하루 최고 240여톤의 쓰레기가 쌓여 환경미화원 260명씩 동원됐다. 평일 광화문 일대 쓰레기는 5∼7톤, 동원되는 환경미화원은 30여명 수준.

▽50,000=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촛불추모는 11월30일부터 12월28일까지 총 29차례 열렸다. 12월14일 가장 많은 5만명이 모여 5만개의 초에 불을 붙였다. 이 촛불의 밝기는 60W 백열등 257개를 한꺼번에 켜 놓은 것과 비슷하다.

▽6,000,000=1년 내내 광화문 앞에 모인 사람들은 6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월드컵 기간 360만명, 촛불시위 20여만명이 모였다. 14만2000㎡에 달하는 광화문 사거리와 세종로 일대에 월드컵 당시처럼 80만명이 한꺼번에 모이면 사람 1명은 가로 세로 18㎝의 공간에서만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

▽80,000,000=월드컵 대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홍명보 선수가 마지막 골을 성공시켰을 당시 80만명이 일시에 평균 20㎝ 높이(몸무게 50㎏으로 계산)로 펄쩍 뛰며 기뻐했다고 가정하면, 지면에 가해진 충격량은 8000만N·S(충격량의 단위)다. 이는 1톤 트럭 3000대가 시속 100㎞로 동시에 벽에 부딪혔을 때 충격. 또 이들이 일시에 함성을 지르면 항공기 이착륙을 100m 앞에서 바라 볼 때의 소음의 양(120㏈)을 느낀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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