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걸교수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위험한 교과서”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7시 59분


지수걸
중학교용 국사 교과서에 도전장을 던진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전국역사교사모임(회장 김육훈)이 21세기형 역사 교과서를 표방하며 3월 출간한 지 최근까지 12만권이 나간 책이다.

지수걸 공주대 교수는 9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21세기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 교육의 방향- 제7차 교육과정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움에서 이 교과서를 비판했다.

지교수는 “국가와 민족을 탈역사화하는 역사 서술은 국사교과서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도 예외가 아니다”며 일제강점기의 서술을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이 교과서에서 ‘우리의 주권을 빼앗겼다’(87쪽)는 설명이 나오지만 주지하듯 ‘한일합병조약’ 제1조로 말미암아 탈취당한 것은 우리의 주권(국민 주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권(군주 주권)이었다”며 국민주권과 군주주권의 혼동을 지적했다.

그는 또 “‘조선의 지옥화(84쪽) 형무소화(86쪽)’라는 표현은 일제를 지나치게 탈역사화한 서술이며 ‘가난은 일제가 가져다준 유일한 선물’(89쪽)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예정보다 못해졌을 수도 있었다(100쪽)’는 서술도 기존 교과서의 ‘민족시련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교과서가 친일파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지만 친일파를 그 시대의 사회구조적 맥락속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했다”며 “‘일제의 문화통치는 친일파를 육성함으로써 민족을 분열시키고자 했던 또 하나의 죄악일 따름이었다’(87쪽)는 서술은 친일파의 형성 배경으로서 일제의 교활한 공작정치(분할통치정책)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전 교과서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지 교수는 “이 교과서는 서양식 근대 문화와 관련, ‘신(新)’ ‘양(洋)’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나 대안에 대한 언급은 애매하다”며 “이 교과서에 나온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 근대화’라는 말이 어떤 근대화를 뜻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지교수는 결론적으로 “우리의 ‘국사’교과서나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도 일본의 후소샤(扶桑社)판 ‘새로운 역사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국가 민족 중심으로 쓰여진 위험한 교과서”라며 “21세기 역사교과서는 정답이 아닌 질문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양정현 서울 구일고 교사는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오늘날도 ‘민족’ ‘국민 국가’는 실제로 인정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서술됐다”며 “다만 민족을 과도하게 강조할 경우 사회 내부의 모순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고려했음을 지교수가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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