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 해법은]토론식 과학수업이 자연계지망 늘린다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10분


15일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이공계 진로선택 촉진 방안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서울대 화학부 김희준 교수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변영욱기자
15일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이공계 진로선택 촉진 방안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서울대 화학부 김희준 교수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변영욱기자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계속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만한 방안이 뚜렷하지 않아 정부는 물론 학계도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진로지도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공유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교사를 위한 이공계 진로선택 촉진 방안 심포지엄’이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동아일보와 동아사이언스, 한국과학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과 함께 일선 중고교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은 경험담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전문인력 태부족〓이공계 기피 현상은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려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생명공학기술(BT)이나 나노기술(NT) 분야는 국가에서 집중 육성하려는 분야지만 연구소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기업들은 해외의 우수한 인력을 채용해 인력 공백을 보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이공계 인력 양성에 정부와 학교, 기업이 공동으로 대응해 국가 성장의 동력을 창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홍국선(재료공학) 교수는 “2002학년도 서울대 대학원 후기 박사과정을 모집한 결과 562명 정원에 445명이 지원해 0.79대 1로 미달됐다”며 “현재 이공계 고급인력이 낮은 대우를 받고 있지만 10년 후에는 인력공급 부족현상이 심해지면 반대로 사회적 대우와 경제적 보상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학교육 뜯어 고쳐라〓현종오 전국과학교사지원센터 대표(서울 성동기계공고 교사)는 “이공계 기피 현상을 위한 대책이 교육현장을 도외시하고 현상적인 치료에만 급급한 느낌”이라며 “이공계 출신의 관계 진출을 늘리고 연봉을 올려 주는 식의 대증요법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 대표는 “이공계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학교현장에서 과학교육이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며 교육인적자원부에는 전담 부서도 없는 실정”이라며 “유치원부터 대학 수준까지의 과학 교육과정을 연구, 개발해 과학교육을 내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 진로교육 필요〓국내 초중고교 현장에서 과학 수업이나 과학 캠프 등을 실시하면서 과학 진로 관련 학습을 병행해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와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었다는 성공 체험담도 발표됐다.

이화여대 최경희(과학교육) 교수는 “중학교 과학 실습수업을 교과서 내용으로만 진행하는 일반수업과 과학관련 진로 접근 수업으로 나뉘어 진행한 결과 후자의 경우 학습효과도 높고 과학 관련 직업에 대한 태도도 더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안양고 김재홍 교사는 “학생 5∼7명으로 팀을 구성해 공동연구를 진행한 뒤 결과를 발표하는 식의 과학탐구토론대회를 개최했더니 연구에 참여한 1학년생 대부분이 자연계 진로를 희망했다”고 소개했다.

청주교육대 정병훈 교수는 “최근 중학생을 대상으로 이공계 진로 탐색 프로그램을 실시했더니 학생들의 적성뿐 아니라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었다”며 “다양한 과학 행사를 통해 학생들이 이공계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수 여학생 유인책 필요〓지정토론자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진로정보센터소장은 “우수 학생을 이공계로 끌어들이려면 학생들이 수학 과학 과목을 기피하는 현상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특히 여학생들의 자연과학 기피현상이 심각한 만큼 여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고 김옥자(부산과학교사모임 대표) 교사는 “서울대 공대 재학생들이 고시 공부에 매달리는 현상은 자신의 적성보다는 학벌 등 사회적 평판도만 보고 전공을 결정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며 “대입제도를 개선하고 진로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이 적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진로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오금고 전화영 교사는 “1학년생을 대상으로 희망 계열을 조사한 결과 전체 18개 학급 가운데 자연계는 6학급에 불과했다”며 “자연계 학생들을 위한 진로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것도 이공계 기피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심포지엄의 토론 내용은 과학기술앰배서더 홈페이지(http://sam.dongascience.com)에 접속하면 검색해 볼 수 있다.

자료:과학기술부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서울대 김희준교수의 '적성 체크리스트'▼

‘내 적성에 맞는 진로는 어느 쪽일까.’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평생 만족하며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울대 김희준(金熙濬·화학부) 교수는 자신의 적성이 이공계에 맞는지, 또 이공계 중에서도 어느 분야에 맞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① 가능한 주관적인 문제보다 객관적인 정답이 있는 문제를 좋아한다. ② 인간관계나 사회문제보다는 자연현상을 생각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한다. ③ 사물을 숫자로 파악하는 것을 좋아한다. ④ 감정적이라기보다는 이지적이다.

김 교수는 위의 4가지 문항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생은 이공계 성향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일단 이공계 진학을 결심한 경우 다음 문항에 해당하는 것이 많으면 기초과학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① 사물의 근본 원리를 깨닫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②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작업은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③ ‘유용한가’ 보다 ‘진실한가’에 더 관심을 가진다. ④ 사람보다는 자연을 대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음 문항들에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은 공학도로서의 적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① 물건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더 잘 작동하는 물건을 만드는 데 관심이 간다. ② 좋은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벌고 사회에 기여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③ 숫자를 다루는 것을 좋아한다. ④ ‘응용’이란 단어에 친근감을 느낀다.

이공계 중 의대나 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다음 문항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어야 한다.

① 사람을 대하기를 좋아한다. ②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헌신할 자세가 돼 있다. ③ 사물의 원리보다 실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면이 더 중요하다. ④ 필요하다면 같은 일을 반복할 용의가 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수능 1등급 이공계 진학률 98년 27.6%→2001년 19.5%▼

고교 우수학생 수능응시
대학진학 경향(단위:%)
구분98학년도99학년도2000학년도2001학년도
자연계 수능응시자 비율47.645.441.635.4
이공계 대학 진학률27.625.221.019.5
수능 계열별 상위 4% 이내 학생 기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가운데 특히 고교 우수생들의 이공계 진학이 계속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1등급인 계열별 상위 4%에 해당하는 수험생 1만2000∼1만3000여명의 수능 응시 및 대학진학 실태를 분석한 결과 최근 4년간 자연계열 수능에 응시한 비율이 11.2% 포인트나 감소했다.

98학년도의 경우 자연계열의 1등급은 1만2732명으로 전체 1등급 수험생의 47.6%를 차지했으나 99학년도 45.4%, 200학년도 41.6%, 2001학년도 35.4% 등으로 계속 감소 추세를 보였다.

또 인문계와 자연계의 우수 학생 가운데 실제로 자연계 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비율도 98학년도 51.2%, 99학년도 49.9%, 2000학년도 46%, 2001학년도 44.1% 등으로 역시 줄어들고 있다.

특히 우수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학하는 비율은 98학년도 27.6%, 99학년도 25.2%, 2000학년도 21%, 2001학년도 19.5%로 감소하는 등 최근 4년간 8.1%나 떨어졌다.

이 같은 현상은 자연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공부가 쉬운 인문계로 지원하는 교차지원 현상도 한몫한 것으로 분석됐다.

인문계 수능을 본 뒤 자연계로 지원한 학생은 98학년도는 수능 1등급자의 8%(1086명), 99학년도 10%(1475명), 2000학년도 11%(1554명), 2001학년도 15%(2475명)로 계속 늘었다.

반면 자연계 수능을 치르고 인문계로 지원한 학생은 98학년도 1%에서 2001학년도에 4%로 교차지원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2003학년도 입시부터 교차지원자에 대한 불이익을 주는 대학이 늘어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관심이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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