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독자리포트/방학은 실습하는 기회

  • 입력 2002년 8월 16일 21시 44분


여름 방학이 시작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개학일이 성큼 다가섰다.

아이들은 과연 이번 방학을 어떻게 보냈을까.

이런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학교 다닐 때와 다름없이 방학 동안에도 여전히 학원을 오가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학교에서는 공부에만 매달리는 아이들의 심성 교육을 위해 ‘봉사활동’ 과제를 내줬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마저 공부 뒷전으로 미뤄놓고 있다.

방학 동안 문화센터에서 필자가 지도하는 초등학생 수업 중에 여행이나 특별한 체험 등 방학 중에 기억나는 일을 주제로 한 기행문쓰기와 신문만들기가 있다.

수업을 할 때마다 ”선생님 쓸 게 없어요. 방학이지만 공부 외에는 별다른 기억이 없거든요”라며 난처해 하는 아이들을 자주 본다.

“가족과 함께 2박3일 휴가를 다녀온다” “숙제도 할겸 전시회에 간다”는 아이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스스로의 계획이라기보다는 부모의 결정에 따르거나 마지못해 세운 것이었다.

부모님의 여력이 일일이 미치지 못하는 가운데 올망졸망한 6남매 속에서 자란 나는 어려서부터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방학이면 엄마를 졸라 먼 곳에 있는 친척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초행길은 두렵고 불안했지만 두 번, 세 번 이력이 붙으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이런 기억은 아마 30∼40대 학부모들의 공통된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된다거나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 탓에 자립심이나 문제해결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진정한 의미의 체험보다는 성적 위주의 교육에 중점을 두다보니 중학생이 돼서도 혼자서는 지하철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옛날에 글만 읽던 한 선비가 있었다.

하루는 들판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자기논의 논둑이 터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논둑 바깥쪽을 막으려고 애썼으나 허사였다. 선비는 하인들에게 달려가 큰일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하인들이 달려와 보니 흙 한 삽만 떠다 논둑 안쪽을 막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인들은 공부를 많이 하고도 별 것 아닌 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선비를 비웃었다.

아무리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도 실생활에 활용할 수 없으면 ‘죽은 지식’이란 이야기다.

공부는 열심이지만 생활에는 관심이 없는 요즘 아이들과 일맥상통한다면 과장일까?

방학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습하기에 좋은 기회이다.

일상 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스스로 계획을 세워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유적지나 전시회 등을 찾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모습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함과 적응능력이 아닐까.

얼마남지 않은 방학 동안만이라도 자유롭게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기회를 갖는다면 아이들은 스스로도 놀랄만큼 부쩍 성장할 것이다.

인천=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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