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학생회의 총장실 점거농성은 어제 학교측과 학생들이 합의안에 서명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지난달 29일 새벽 학생 300여명이 기습적으로 총장실을 점거한지 11일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번 농성은 많은 실망감과 씁쓸한 뒷맛을 자아내고 있다.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라는 극한 투쟁을 선택한 것은 모집단위 광역화 철폐, 2002년 등록금 인상분 반환 등 8가지 요구사항을 학교측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료적인 학사행정과 학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점거에 가담한 학생들의 폭력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 기간 중 보여준 행동은 한마디로 도를 지나쳤다. 총장실내 기물 파손은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총장실과 인근 방을 세미나실로 학생들에게 빌려주는가 하면, 학생들을 상대로 총장실에서 비디오를 상영하기도 했다. 이른바 ‘총장실에서 영화보기’ 프로그램이다. 총장실의 권위를 뒤집는다는 신세대식 발상에서 나온 행동인지 몰라도 교수들은 총장실을 유린당했다며 흥분하고 있다. 학생들은 총장실 내에 있던 문서와 총장의 개인서류를 뒤져 이를 토대로 기자회견을 갖고 총장의 개인비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대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해마다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서울대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인재양성이나 학술연구 면에서 더 분발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학생운동의 방식도 큰 문제이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들을 어떻게 가르쳤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에서 이처럼 충격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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