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신일/보충수업 어쩌란 말이냐

  • 입력 2002년 3월 27일 18시 04분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지역 고등학교의 보충수업을 금지한다고 선언함으로써 한 주일 전 보충수업을 사실상 허용한 교육인적자원부의 방침에 따라 보충수업을 준비하던 고등학교와 학부모들이 당황하고 있다. 당사자인 학교와 학생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민감한 입시관련 정책을 둘러싸고 보여주는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의 대립을 보면서 시민들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정책 대립은 이번만이 아니다. 교육부의 자립형 사립고 허용 방침에 대하여 서울시교육청은 반대해 서울 지역에서는 자립형 사립고를 한 학교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이러한 정책 대립은 그렇지 않아도 파행으로만 일관해온 교육정책을 더욱 왜곡시키고 나아가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불신을 깊게 만들고 있다.

▼교육부-서울교육청 정책대립▼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교육부의 보충수업 허용 방침은 그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공교육 내실화 방안’이라는 거창한 제목에 비하여 그에 담긴 내용은 크게 새로운 것도 없었고, 기대해볼 만한 내용도 별반 없었다. 학교의 필요와 결정에 따라 보충수업을 실시할 수 있다는 방침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보충수업 허용이 피폐해진 공교육을 내실화하는 데 어떻게, 얼마나 기여한다는 것인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사교육비 경감을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정부로서는 사교육비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낮추는 것이 아니냐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학원과 개인과외로 몰리는 학생이 증가하고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도 늘어나면서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 온 교육 개혁 전반에 대한 불신이 증폭된 것이 보충수업 허용 정책으로 표출됐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학교 공부보다는 학원 수업에 더 치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학교로 끌어들이고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도 줄여주자는 고육책이다.

그러나 보충수업을 학교에서 실시한다고 사교육비가 얼마나 줄어들지 미지수다. 과연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의 보충수업을 택할 것인가 말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보충수업 전면 금지 조치는 아마도 서울의 교육 상황에서 보충수업 허용이 사교육비를 줄이고 더구나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는 전혀 기여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사이의 이러한 정책적 대립은 실상은 단위 학교의 운영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오히려 방해만 되고 있다. 보충수업의 문제는 학교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할 일이다. 학교별로 학교운영위원회가 구성되어 크고 작은 학교의 일을 교사, 학부모, 지역 사회 인사들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개별 학교의 처지를 고려해 보충수업을 실시할지 여부를 결정하면 될 일이다.

지방의 경우 과도한 학원비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적은 학교에서 정규수업 외의 보충수업을 해 주기를 희망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서울도 지역에 따라서는 학원에 보낼 수 없는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해주기를 희망할 것이다. 교육 행정 당국이 획일적으로 된다, 안 된다 하고 못박을 것이 아니다.

기실 문제의 근본은 우리의 대학입시제도에 있어 고등학교에 대해 대학과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내신성적 산출을 대학이 믿지 않고 있다. 또 입시에 있어 고등학교의 정상적 교육보다는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학부모들이 많다. 결국 전문성과 도덕성에 바탕한 고등학교 교육의 신뢰 회복이 관건이다.

▼학교서 자율선택 하게해야▼

조선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 그릇된 과거제도를 비판하면서도 행정 관리들이 젊은이들에게 과거 준비를 격려하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의 학(學)은 인간 본연의 마음을 파괴한다. 그러나 과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부득불 이를 준비하도록 권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일러 과예(課藝)라 한다. 과예를 부지런히 하여 합격자의 수가 날로 늘면 문명한 고을이 될 것이니 이것도 목민관의 지극한 영광이 되는 것이다.”

대학입시제도와 공교육 제도의 부족한 부분을 비판하고 수정해야 하지만 지금 이 제도 아래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경구다. 제도 개혁을 해야 하지만 제도 개혁의 부담을 학생들에게 지워서는 안 된다.

김신일 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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