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병원 불법 환자유치 기승

  • 입력 2002년 3월 1일 18시 15분


지난해 말 쌍꺼풀 수술을 받으려는 친구를 따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K성형외과를 찾은 직장 여성 이모씨(28·경기 성남시)는 당초 계획에도 없던 성형수술을 받고 후회가 막심하다.

친구를 기다리던 이씨는 “쌍꺼풀 수술을 하면 더 예뻐보이겠다”는 이 병원 상담실장의 은근한 유혹에 빠지고 만 것. 이씨는 “코와 쌍꺼풀 수술을 함께 하면 300만원에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에 그만 그 자리에서 수술을 결정했다.

이씨는 “다른 병원보다 좀 싸기는 했지만 거울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다”면서 “안 해도 될 수술을 마치 뭔가에 홀려 급하게 해치운 것 같아 후회된다”고 말했다.

성형외과 등 미용 관련 일부 병의원들의 불법 환자유치가 극에 달하고 있다. 말주변 좋은 상담실장을 영입해 의료상담을 해주는가 하면 상당수의 성형외과가 ‘리셉션니스트’라고 불리는 상담직원을 두고 환자를 유치하고 있다.

▽실태〓광대뼈가 튀어나온 황모씨(32·여)는 안면교정술을 받고 싶긴 하지만 상담실장들의 화려한 수사에 자신의 얼굴을 믿고 맡길 만큼 신뢰할 수 없어 아직 수술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황씨는 “의사도 아닌 상담실장과 면담하는 데만도 1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데다 찾는 병원마다 다른 부위까지 수술을 권해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환자유인 실태는 비단 성형외과뿐만이 아니다. 안과, 피부과, 비뇨기과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과목에서 이러한 환자유인 실태는 이미 보편화되다시피 했다.

또 인터넷 ‘의료 공동구매’나 ‘의료 경품’ 등의 코너를 통해서도 환자 유치가 행해지고 있다.

의료 공동구매는 성형 관련 사이트가 병의원과 연계해 5명 또는 10명 단위로 회원을 모집해 소개하고 수술가격을 10∼30%가량 할인 받게 해주는 것. 최근에는 매월 가입 회원을 추첨해 라식, 코 성형, 쌍꺼풀, 유방확대 등 경품 수술을 제공하는 사이트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문제점〓이러한 환자유치 경쟁은 개원의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심해지고 있다. 문제는 개원의 숫자가 늘어나고 의원들의 환자유치 경쟁이 심해지면서 목숨과 직결되는 의료행위가 일반 상품처럼 무분별하게 매매되고 있다는 것.

게다가 공동구매나 경품 수술은 짧은 시간에 많은 부위를 수술하기 때문에 부작용의 위험이 있는 데다 경품 수술의 경우 공짜인 탓에 피해보상을 전혀 받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의원들의 과도한 광고 홍수 속에 피해를 보는 것은 의학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환자 개인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미용 관련 병의원들의 불법 환자유인 행위에 대해 전문의들도 철저한 단속과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개원의협의회 국광식(鞠光植) 공보이사는 “병의원 광고에 대해 지나치게 규제일변도인 지금의 의료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지만 현재 성형외과 등 미용 관련 병의원의 불법 광고와 환자 유인행위 실태는 너무 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 당국의 철저한 단속과 함께 개원의 자신들도 의사로서 윤리와 품위를 지키도록 하는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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