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14년째 부천 필하모닉 '전국 빅3' 대접 급성장

  • 입력 2002년 2월 22일 18시 42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모든 예술인의 의무입니다.”

KBS·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국내 정상급 교향악단으로 인정받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3년째 부천필을 이끌고 있는 임헌정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49·서울대 음대 교수)는 ‘젊은 도전정신’이 부천필의 핵심 정신이라고 말한다.

57년 역사의 서울시립교향악단, 40년 가까운 연륜을 쌓은 부산·대구·인천시립교향악단 등에 비하면 1988년 창단된 이 교향악단은 아직 ‘어린애’와 다름없다.

도시 인구만 보더라도 부천(75만명)은 서울의 10분의 1, 인천의 3분의 1에도 못 미쳐 관객층도 엷다.

부천시민회관 지하 1층 사무실을 개조해 연습장으로 사용할 정도로 변변한 공간도 없고단원들의 평균 연봉(1400만원)도 다른 유명 교향악단의 절반 수준.

그러나 부천필은 이런 객관적인 한계를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두 뛰어 넘었다.

이제는 중앙무대에서도 ‘부천필이라면 OK’라고 할 정도로 지방을 뛰어넘은 ‘거물급’ 대접을 받는다.

월드컵 개최 10개 도시 교향악단이 참가하는 4월 교향악 축제에 미개최 도시 교향악단으로는 유일하게 초대받을 정도.

그렇다고 지역을 외면하고 중앙무대에서만 뛰는 것도 아니다. 1년 평균 50여회의 연주회 가운데 80% 정도는 부천시민을 위한 자리.

23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제4회 어린이음악회’를 비롯해 정기연주회와 학교나 양로원 등을 방문하는 찾아가는 연주회도 틈틈이 마련한다.

이쯤되면 ‘도대체 부천필은 어떤 저력이 있기에…’라는 물음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

그렇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도전정신과 변화 그리고 노력.

1999∼2003년까지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연주회가 그 대표적인 예다.

어렵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10개의 교향곡을 모두 연주한다.

전기호 기획팀장(34)은 “끊임없이 새로운 레퍼토리를 추구하는 것이 부천필의 가장 큰 강점”이라며 “귀가 닳도록 들은 선율로는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임헌정’이라는 뛰어난 지휘자의 존재도 큰 힘을 발휘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42년 동아콩쿠르 역사에서 유일한 작곡부문 대상 수상자(14회)인 그의 능력과 카리스마는 음악계에 정평이 난 상태.

그는 “98명 정원에 28명이 공석이다. 실력을 못 갖춘 연주자를 선발하느니 차라리 자리를 비워둔다”고 할 정도로 엄격한 ‘실력주의자’이기도 하다.

자연히 단원들은 늘 긴장 속에서 연습하면서도 한곡을 끝내는 데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 동안 매달려도 불평 한마디 없다.

입단 6년째를 맞은 오현승씨(29·첼로)는 “힘들다거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어려운 곡일수록 공연을 마친 뒤의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현재 부천필의 최대 바람은 제대로 된 상설 연주공간을 확보하는 것.

다행히 5대 문화사업의 1순위로 부천필을 내세울 만큼 부천시도 적극적이어서 조만간 이 소망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승철 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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