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장관 퇴근않고 집무실서 야전침대 생활

  • 입력 2002년 2월 3일 18시 55분


이태복(李泰馥) 보건복지부장관이 지난달 29일 취임 후 장관실에서 야전침대 생활을 하는 등 ‘파격’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 장관은 장관에 임명된 날 부친을 찾아가 “앞으로 몇 달간 찾아뵙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이튿날부터 퇴근하지 않고 있다. 용산역 지게꾼으로 시작한 노동운동가의 험한 길, 도피생활, 체포와 ‘고문기술자’ 이근안과의 악연, 7년8개월의 수형 생활 등등 온갖 고초를 겪은 그에게는 어쩌면 장관실의 간이침대 조차 ‘사치’인지 모른다.

“간부회의에서 직원들에게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설혹 일 때문에 남더라도 7시를 넘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이런 스타일의 생활이 편하지만 그분들은 사정이 다르니까요. 산적한 부처의 과제가 정리될 때까지 당분간 이렇게 지낼 겁니다.” 그가 취임 다음날 한 말이다.

그는 의약분업 철폐를 주장하는 대한의사협회를 조만간 직접 방문해 대화를 갖겠다고 말했다. 의협이 정책의 중요한 파트너인 데다 신상진 회장을 비롯한 현재의 의협 지도부와는 시대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대화가 통할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대통령수석비서관 시절 이것저것 꼼꼼히 챙기는 바람에 정부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 통하는 그의 별명은 ‘복지노동사무관’이었다.

이 별명에 대해 본인은 “정책을 만들다 보면 현실 여건과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데 틀린 내용을 자주 지적하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 장관은 토요일인 2일 오후 광주행 비행기를 탔다. 5·18묘지 참배가 목적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민주화운동 동지로 항쟁 당시 숨진 윤상원씨의 집을 찾아가 윤씨의 부친을 위로했으며 이어 북구 운정동 5·18묘지를 참배했다.

“80, 90년대 힘들었던 시절,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이곳에 잠든 민주영령이 남긴 역사의 명령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역사 앞에 당당한 자세로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이분들 앞에서 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만 하루 동안 광주에 머문 뒤 3일 오후 귀경하면서 한 말이다.

간이침대 생활 등 이 장관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맡은 일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평가할 만하지만 관료조직이나 공직자를 불신한다는 일종의 시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복지부 내에서 나오고 있다.광주〓조헌주기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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