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보력 정보기관 넘본다

  • 입력 2002년 1월 3일 13시 57분


대형 건설업체인 A사의 H과장은 2년전 사내공모를 통해 확정된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등록하러 갔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미 2시간 전에 경쟁사인 B건설 직원 명의로 홈페이지 주소가 등록돼 있었던 것. 그는 “사내공모를 하는 과정에서 비밀이 경쟁사로 새어나가 낭패를 본 것 같다”며 “당시 경쟁사의 정보력이 화제가 돼 사내 보안과 정보활동이 크게 강화됐다”고 말했다.

‘정보는 돈이다.’ 고급 정보 하나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기업들의 정보활동도 급속하게 강화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국가정보원에 견줄만한 정보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을 정도. 특히 오늘의 삼성 이 있게 된 것도 다 정보력 덕택이라고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삼성의 영향으로 그동안 정보수집에 관심을 갖지 않던 대기업들도 최근 정보팀을 크게 보강하고 있는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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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별 정보조직 운영 현황

▽삼성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정보력과 관련된 일화만도 무수히 많다. “러시아가 영수증 발행 금전등록기를 수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러시아 시장을 석권한 사례나 개각 내용을 당사자보다 먼저 알아내는 것”등은 삼성 정보력의 단면에 불과하다.

삼성이 이처럼 정보에 강한 것은 전 계열사 임직원이 정보맨 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 모든 삼성맨은 가치있는 정보를 그룹 사내 전산망 싱글 에 올리는 일이 일상화 돼 있고 내용에 따라서는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특급정보의 대부분은 구조조정본부 내에 있는 별도의 정보팀을 통해 취합된다. 13∼14명의 정보수집팀이 재계는 물론 정치권과 검찰, 경찰 관련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면 비서실에 소속된 7명의 분석팀이 정보가치를 평가해 주요 내용은 계열사에 곧바로 통보한다.

삼성은 이밖에도 소그룹 단위의 정보팀을 운영중이며 각 계열사들도 정보전담 직원을 두고 취득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또 대외협력단은 전국 5개 권역에서 지방정보를 수집하고 해외정보는 주재원과 연구원을 통해 분석, 본사에 보고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분석팀이 최종 리포트로 만들어 이건희(李健熙) 회장 등 2∼3명에게만 보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정보력이 주요인물 관리에도 철저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한 삼성출신 인사는 “웬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은 삼성의 인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으며 출신지, 출신학교, 주소 등 기본적 사항은 물론 취미, 가족, 친구관계 등 세밀한 사생활까지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다른 대기업도 정보활동 강화 추세= LG의 정보력도 최근에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LG는 최근 국정원 출신 인사를 상무로 영입하는 등 정보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LG경제연구소 산하 경영개발원에 7명으로 구성된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재호(鄭在昊) 부사장이 이를 총괄하고 있다. 국정원 출신 임원은 직원들에게 정보활동 수집과 분석의 노하우를 전수,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 LG는 이밖에도 계열사별로 1∼3명의 정보전담 직원을 두고 있으며 취합된 정보는 계열사 사장단과 회장단에만 보고 된다.

SK도 SKT를 중심으로 정보활동을 강화하는 추세. 사업자 선정이 중요한 이슈가 된 지난해 기존 기업정보팀 이외에 별도로 국회와 관련부처 담당 정보팀을 신설했으며 전무급에서 정보조직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그동안 정보의 중요성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대도 최근 자동차를 중심으로 정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정보활동은 첩보전 방불= 정보맨들은 보통 학연과 지연을 총동원해 출입처 인사들에게 접근한다. 핵심인사의 경우 지인(知人)의 소개를 받는 것도 한 방법. 이들은 정보원의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활동비도 아끼지 않고 쓴다. 정보맨 한사람이 쓰는 활동비는 한달에 300만∼20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정보요원들의 활동영역도 더욱 넓어진다는게 정보맨들의 설명. 한 대기업 정보요원은 “선거철에는 정관계와 학계 주요인사의 동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며 “대선이 끝나면 기업 관련 주요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작은 정보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고 귀뜸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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