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시장 위축 신용불량자만 '덤터기'

  • 입력 2001년 12월 6일 18시 16분


정부의 대대적인 악덕고리사채업자 단속과 일본 대금업자 및 신용금고의 사채(私債)시장 진출로 사채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사채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신용 불량자들이 돈을 빌리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신용불량자들은 ‘사채 암시장’을 통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기존의 사채 금리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게 돼 빈익빈(貧益貧) 현상이 더욱 심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사채업자들이 생존을 위해 기존의 고금리 대출 방식에서 신용카드 변칙 발급, 신용카드 연체 대납 등 위험은 줄이면서 고리(高利)를 챙길 수 있는 대출 중계 방식으로 영업 형태를 바꾸고 있어 이에 따른 새로운 피해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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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방식의 변화〓이모씨(58·무직)는 8월 500만원을 빌리려고 사채업자를 찾았다가 낭패를 봤다. 사채업자는 “카드깡으로 돈을 빌려주겠다”며 이씨가 직장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은행 신용카드를 발급받도록 해줬다.

그는 카드가 나오자 100만원을 현금서비스로 찾아 선이자를 떼고 다시 380만원 상당의 컴퓨터와 쌀을 산 것처럼 위장카드가맹점에서 전표를 끊었다. 그리고는 카드 발급 수수료 57만원과 카드깡 수수료 102만원, 기타 수수료 5만6000원을 제하고 215만4000원만 지급했다. 결국 이씨는 현금 215만4000원만 받고 480만원을 갚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사채업자는 가만히 앉아 264만6000원을 번 셈이다.

이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신용카드 변칙 발급 대출’의 전형적인 수법. 사채업자들은 이처럼 기존의 고리 대금업 대신에 신용카드를 매개로 한 대출 중개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 사채업자의 경우 △신용카드 변칙 발급 및 신용카드 연체 대납 대출 △신용금고 대출 알선 △할부 금융사를 이용한 대출 중개 등이 대표적인 영업 형태.

규모가 큰 사채업자들은 정부의 단속을 피해 국세청에 사업자로 등록하고 은행이나 신용금고 등과 제휴하는 등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사채업자 감소〓사채업체인 대호크레디트가 전국의 생활정보지와 일간지에 실린 사채 광고를 분석한 결과 3월 3만여건이던 광고건수가 11월말 5000여개로 83% 이상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사채업자가 올 초에 비해 5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사채업은 광고에 의존하기 때문에 광고건수가 줄었다는 것은 곧 사채업자가 준 것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사채업자 감소는 올 초부터 계속된 정부의 집중 단속과 큰돈을 동원할 수 있는 일본 대금업자의 사채시장 진출, 제도권 금융기관인 신용금고의 사채시장 진입 등에 따라 운신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0만 신용불량자의 앞길 막막〓6일 금감원에 따르면 1997년말 149만명이던 신용불량자는 지난해말 258만6000명, 올 9월말 현재 273만6000명으로 급증했으며 11월말 현재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카드대금의 경우 5만원 이상의 금액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은행연합회에 신용불량자로 등재되고 대출 등 금융거래가 제한된다.

금감원 조성목(趙誠穆)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긴급 자금조달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며 “금융이용자보호법의 제한 이자율도 사채시장의 현실을 고려해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민동용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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