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들 "뇌물수사 말라는 말이냐"

  • 입력 2001년 11월 15일 18시 30분


지난달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영재(金暎宰)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특수부 검사들이 술렁거렸다.

무죄판결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뇌물을 줬다는 사람이 법정에서도 일관되게 뇌물 제공 사실을 인정하는데 그 말을 믿지 않고 어떻게 뇌물을 안 받았다는 사람의 말을 믿고 무죄판결을 내리느냐”는 것이었다.

검사들은 “돈을 준 사람의 말을 배척하고 무죄판결하면 앞으로는 뇌물죄 수사를 못한다”며 반발했다.

이런 우려가 검찰 특수부에서 일어났다. 서울지검 특수2부의 김은성(金銀星) 국정원 2차장 수사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

검찰은 김 차장과 현장에 함께 있던 강모씨의 “돈을 받지 않았다”는 진술 등을 근거로 내사종결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일관되게 “김 차장에게 1000만원을 줬다”고 한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李京子)씨의 진술은 배척했다. “돈을 줬다”는 진술보다 “돈을 안 받았다”는 진술을 더 신뢰한 것이다.

검찰의 이런 결론은 과거 뇌물수사 관행에도 배치된다. 통상적으로 돈을 줬다는 진술이 구체적일 경우 돈을 받았다는 사람이 부인해도 기소했다. 93년 슬롯머신사건 수사 당시 검찰은 당시 박철언(朴哲彦) 의원의 완강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박씨를 구속기소해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한 검사는 “상식적으로 누구나 뇌물이라고 인정할만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지나치게 법적인 잣대만 들이대 무죄를 선고해서 검찰이 불만을 나타냈는데 이번에는 검찰이 그런 것 같다”며 “앞으로 돈을 안 받았다고 부인하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앞으로 뇌물죄 수사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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