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게이트’에 갇힌 민생현안들…산자위등 관심못끌어

  • 입력 2001년 9월 29일 17시 30분


“우리도 언론에 보도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게 뭐냐.”

“우리 모두 강원랜드(국회 산업자원위 관할)로 가서 슬롯머신의 승률을 조작해 직접 도박을 하면 된다.”

‘이용호 게이트’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정무위 소속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의 ‘폭탄주 향응’ 사건이 터지고 난 직후인 27일, 국감기간 중 단 한 차례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국회 산자위 의원들 간에 오간 푸념 섞인 농담이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의원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아무리 정책대안을 제시하려 해도 폭로성 사건 때문에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며 “내년부터는 폭로물 시리즈라도 준비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 테러 참사 1주일, 이용호 게이트 2주일’이라는 얘기가 오갈 정도로 이번 국정감사는 대형 사건으로 인해 민생 현안들이 거의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 테러 참사나 이용호 사건을 다룬 통일외교통상위나 정무위 법사위 등은 각광을 받았지만 다른 상임위는 관심을 끌지 못했고,올여름 국감에서 자신들의 성가를높이기위해나름대로노력해온이들 상임위소속의원들의허탈감은그만큼 컸다.

‘이용호 게이트에 파묻힌’ 대표적인 민생 현안으로 의원들이 꼽는 것은 △수돗물 바이러스 △건강보험 재정 △지방자치단체 재정난 △에너지 관련 산업 구조개편 △사립학교법 개정 등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감청 대장 열람을 위원회가 의결했지만 이 또한 이용호 게이트 때문에 쟁점화에 실패했다.

의원들이 2∼3개월에 걸쳐 애써 준비했던 국정감사 자료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행정자치위 이강래(李康來·민주당) 의원의 경우 전문가들과의 10여차례에 걸친 면담 끝에 ‘전자민원시스템 구축의 문제점’ ‘사이버테러 현황과 대처 방안’ 등의 연구 보고서를 냈지만 아무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 김형오(金炯旿·한나라당) 의원의 한 측근은 “과학 기술 분야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해 원자력이나 생명공학 등에 대한 질의를 하려면 최소 2개월 이상의 공부가 필요하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라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의원들의 활약상을 조금이라도 더 홍보하려는 의원 보좌진들의 눈물겨운 노력도 눈에 띄었다. 산자위 소속 한 의원의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하루에 5, 6차례나 전화를 걸어 준비 자료를 홍보하는 바람에 ‘스토커’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상임위 간의 현저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이번 국감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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