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급발진 제조사 책임" 첫 판결

  • 입력 2001년 9월 16일 18시 38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차량 급발진 사고는 제조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은 사고 원인을 운전자가 아닌 제조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어서 앞으로 상급심에 의해 받아들여질지 주목된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유제산(柳濟山) 판사는 지난달 8일 사고차량의 보험회사였던 삼성화재보험이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제조회사는 보험사에 118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16일 밝혀졌다.

사설주차장 주차관리원 이모씨는 99년 말 김모씨의 승용차를 이동시키려고 시동을 거는 순간 자동변속기 레버가 ‘P(주차)’에 있던 승용차가 갑자기 후진하는 바람에 담벼락을 들이받고 다시 전진해 주차장에 세워둔 다른 차들과 충돌했다.

보험사는 김씨에게 우선 보험금을 지급한 뒤 “잘못이 있는 쪽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씨와 주차장,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의 쟁점은 사고가 이씨의 운전잘못 때문인지, 차량 자체의 결함 때문인지 여부. 운전 경력 30년인 이씨는 “시동만 걸었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자동차회사는 모의 실험과 연구 결과를 제출하며 “급발진 사고일 수 없다”고 맞섰다.

유 판사는 “운전자나 자동차회사나 결함 유무를 정확히 입증할 수 없는 만큼 객관적 상황으로 판단해 운전자의 과실이 없었다고 판단되면 운전자가 자동차에 결함이 있었음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결함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 판사는 또 “제품을 팔아서 이익을 얻는 이상 원인 모를 소비자의 피해는 제조회사가 부담해야하지 않느냐는 ‘손해배상의 공평부담 원칙’에 입각해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아자동차는 “재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차량결함에 대한 원고의 입증과정이 거의 없었고 변론 기회도 3번밖에 되지 않는 등 심리가 불충분했다”며 항소했다.

현재 전국 법원에는 인천지법에 대우자동차를 상대로 한 42건을 포함해 모두 70여건의 유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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