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편지발송 함부로 못막는다"

  • 입력 2001년 8월 15일 18시 38분


“동아일보 기자에게 편지 좀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교도관의 부당한 대우를 호소한 편지를 기자에게 보내려다 구치소측의 검열로 발송을 거부당했던 재소자 출신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이겼다.

말다툼 끝에 동료 선원에게 칼을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복역해온 오민씨(44). 그는 지난해 초 수감동료와 다툰 것 때문에 1개월간 징벌방에 갇히자 이를 취소해달라며 낸 행정소송의 진행을 위해 서울구치소에 일시적으로 수감됐었다.

오씨는 같은 해 6월 구치소 안에서 ‘재소자 출신 유모씨가 교도소 내에서 집필권과 접견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 승소했다’는 본보 기사(지난해 6월22일자 A29면 보도)를 읽었다.

오씨는 자신도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유씨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본보 기자에게 보내려 했다. 그러나 구치소측은 발송을 허가하지 않았다.

오씨는 그 후 다른 신문 기자에게도 편지를 보내려 했지만 실패했고 어렵게 알아낸 유씨의 주소로 보내려던 편지 역시 제지당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오씨가 변호사에게 보내는 글에 동봉한 편지 3통도 모두 구치소 내에서 폐기되고 말았다.

편지에 ‘악질 교도관’ ‘교도소장 면담 거부’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이 그 이유. 행형법 시행령상 ‘명백한 허위사실’ 등이 담긴 편지는 구치소측이 검열을 통해 발송을 막을 수 있고 오씨의 편지는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오씨는 지난해 12월 “교도관들이 편지 보낼 권리를 침해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1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사실이 일부 신문에 보도되자 구치소측은 이 기사를 삭제한 채 신문을 보도록 했고 오씨는 소송이유에 ‘알 권리 침해’도 추가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민사12단독 정진수(鄭進受) 판사는 14일 “국가는 오씨에게 15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정 판사는 “재소자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는 법조문은 엄격하게 해석돼야 한다”며 “오씨의 편지가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구치소가 편지 발송권과 신문 열람권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소송을 대리한 이상희(李相姬) 변호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밖에 알릴 마땅한 방법이 없는 재소자에 대해 연결통로의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부정적인 내용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온 교정기관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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