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기탁금제 위헌결정]전국구 선택권 유권자에 '반환'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42분


지역구 후보에 대한 ‘1인 1표’ 투표결과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배분하도록 규정한 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연세대 허영(許營·헌법학)교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말했다.

현행 전국구 배분방식은 유권자인 국민의 의사와 선택을 왜곡 반영해 국민주권의 헌법원리를 해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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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선택권의 박탈〓현행 전국구 배분방식의 문제점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A지역구에 B정당 소속의 C후보가 출마했다고 가정하자.

유권자 ‘갑’은 C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싶은데 그가 속한 B정당은 싫어한다.

그러나 선거법 146조 2항의 ‘1인 1표제’에 따라 갑은 선거에서 이 두 가지 의사를 다 반영할 수 없으며 C후보를 찍든지, 안찍든지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

결국 갑이 C후보의 인물됨을 생각해 C후보를 찍었다고 하자.

이렇게 해서 지역구 국회의원 227명이 뽑힌다.

다음은 46석의 전국구 의석 배분.

선거법 189조 1항은 각 정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비율을 기준으로 전국구 의석을 배분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는 전국구 배분에서 유권자 갑의 의사가 정반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B정당이 싫은데도 C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에 갑도 B정당의 전국구 의석을 늘리는 데 기여한 결과가 된 것이다.

이런 선거방식은 유권자의 의사를 절반밖에 반영할 수 없어 ‘절반의 선택권’을 빼앗기는 셈이 된다.

헌법재판소도 이런 이유로 189조에 대해서는 전부 위헌을, 146조2항에 대해서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지역정당 고착과 신생정당 출현 방해〓‘1인 1표제’는 또 정치권의 가장 큰 병폐인 ‘지역정당’ 구도를 고착화하는 결과도 초래한다.

유권자가 특정지역에 기반을 둔 A정당을 지지할 경우 다른 정당의 후보가 마음에 들더라도 일방적으로 A정당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풍토이기 때문이다.

선거법은 또 지역구에서 5석 이상 또는 유효투표의 5% 이상을 득표한 경우에만 전국구 의석을 배분하도록 하고 있어 소수 신생정당의 출현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선거법 개정 불가피〓이런 모순은 지난해 선거법 개정협상 때부터 지적돼 왔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헌법학자들과 정치권 일부에서는 ‘1인2표제’를 골격으로 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유권자가 인물(후보자)과 정당을 별도로 선택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갑이 ‘C후보’와 ‘D정당’ 두표를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개혁 구상은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선거법 협상과정에서 부결됐고 지난해 2월 현행 선거법처럼 기형적인 모습의 선거법이 탄생했다.

허 교수는 “현행 전국구 제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잘못된 제도”라며 “유권자의 의사와 선택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거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용어풀이◇

▼한정위헌

‘위헌’ 결정은 문제의 법 조항이 어느 모로 보나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 내려진다. 반면 ‘한정위헌’ 결정은 법률의 문언(文言) 의미 목적 등으로 살펴볼 때 한편에선 합헌으로, 다른 한편에선 위헌으로 판단될 수 있을 때 내려진다. 즉 법조항이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한 경우 법조항 자체는 그대로 둔 채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 의미와 내용의 해석 범위를 정해 이 범위를 넘으면 위헌으로 보는 것이 ‘한정위헌’ 결정이다.

▼비례대표제

비례대표제는 표의 등가성(等價性)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고안된 선거제도다. 당선권에 못미치고 떨어진 후보자들을 많이 가진 정당도 그 득표비례에 따라 일정한 의석을 갖게 함으로써 원내 진출이 가능토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사표(死票)를 방지하여 유권자의 의사를 최대한 의석수에 반영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1인1표제

비례대표제에서의 ‘1인1표제’는 비례대표 후보가 아닌 지역구 후보에게만 표를 던지는 제도다. 현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이를 채택하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직접 투표가 없으므로 지역구 후보가 얻은 한 표를 소속 정당이 얻은 한표로 여긴다. 이 제도하에서는 지지하는 정당과 지역구 후보가 다를 경우 유권자의 정확한 의사반영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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