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지킴이 시민 256명, 대지산 8만평 숲 살렸다

  • 입력 2001년 5월 10일 18시 26분


‘256명이 지켜낸 28만㎡.’

국내 첫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인 경기 용인시 대지산 살리기 운동이 주민과 시민단체의 승리로 귀결됐다. 건설교통부는 10일 죽전지구 내 28만㎡(약 8만5000평)를 택지지구에서 제외해 공원 또는 녹지로 지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토지수용까지 끝낸 후 이를 번복해 개발을 중단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시민단체와 주민이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통해 매입한 100평을 중심으로 한 5만㎡는 녹지로 지정키로 했으며 주민이 지난해 그린벨트로 청원했던 31만㎡ 중 21만㎡도 공원 또는 녹지로 보전된다. 건교부는 이와 함께 죽전지구 내 현대빌라와 동부아파트, 산내들아파트 등 난개발된 4곳에도 1만7000㎡ 규모의 녹지를 추가 조성하기로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그동안 대지산 살리기운동을 주도해온 환경정의시민연대와 주민 10여명은 대지산 ‘나무 위 시위’ 현장을 찾아 기쁨을 함께 했다. 용인보존공대위 김응호(金應鎬·45) 위원장은 “최근 토지공사가 땅을 강제 수용해 나무를 베어낼 때는 크게 낙담하기도 했다”며 “정부가 뒤늦게나마 주민의 요구를 수용한 것은 정말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부터 15m 높이의 상수리나무에 텐트를 치고 12일째 ‘고독한 투쟁’을 계속해온 환경정의시민연대 박용신 정책부장(34)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시위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정부가 빨리 결정을 내렸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지산 살리기운동은 지난해 7월 18일 환경정의시민연대와 경주 김씨 종친회 등이 공동으로 “후손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며 대지산 일대 31만㎡에 대해 그린벨트 지정청원 운동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후 주민과 환경정의시민연대 회원 등 256명이 2000만원을 모금해 지난해 11월 대지산 중턱 땅 100평을 구입하는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토지공사가 올 2월 토지를 강제수용해 대지산 일부를 벌목하면서 개발이 본격화 되자 시민단체와 주민은 지난달 29일부터 ‘나무 위 시위’와 ‘금줄치기’운동 등으로 맞섰다.

대지산은 경기 용인시 수지읍 죽전리와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사이에 위치한 해발 380m의 산으로 주말이면 2000여명의 주민이 찾아 산책을 즐기는 곳이다. 토지공사가 개발하는 죽전지구는 수지읍 죽전리, 구성면 보정리 일대 360만㎡(약 108만평)로 98년 10월 지구지정, 99년 12월 개발계획이 승인됐으며 5만7000명 수용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건교부는 “효율적 개발을 위해 토지를 수용했으나 많은 주민이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는 데다 환경단체 등의 반발이 심해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서왕진(徐旺鎭) 사무처장은 “국내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의 첫 결실로서 향후 환경운동에 큰 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개발일변도의 정부정책이 환경보전을 먼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무위 시위' 박용신씨▼

대지산 보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 ‘나무 위 시위’를 감행한 환경정의 시민연대 박용신 정책부장(34). 10일 건교부가 대지산을 보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그는 12일간의 고통스러운 ‘나무위 시위’에도 불구하고 환한 얼굴로 V자를 그렸다.

박씨는 벌목 위기에 처한 삼나무 원시림을 지켜낸 미국 여성환경운동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의 ‘나무 위 시위’를 대지산으로 옮겨온 주인공.

“텐트가 비좁아 무릎이 아팠고 대소변 보는 것이 불편했을 뿐 큰 어려움은 없었다”는 박씨는 “휴대전화로 하루 20여통씩 걸려오는 격려전화가 힘이 됐다”고 말했다.

낮에는 주로 이번 시위의 당위성을 알리는 홍보전화와 독서로 시간을 보냈고 장기전에 대비해 기체조와 단전호흡 등으로 몸을 단련했다. 식사는 나무 아래에 지원캠프를 만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시민단체 동료들이 인근 식당에서 가져온 음식으로 해결했다.

밤마다 상수리나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박씨는 “개인적으로는 나무에게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박씨는 도로개설, 녹지보전방법 등 구체적인 세부안이 타결되는 것을 좀 더 지켜본 뒤 나무에서 내려올 생각이다.

<용인〓남경현기자>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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