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신문고시수정안 문제점]'족쇄' 슬그머니 더 조여

  • 입력 2001년 4월 11일 18시 26분


공정거래위원회가 11일 규제개혁위원회에 올린 신문고시(告示) 수정안은 외견상으론 당초보다 후퇴한 듯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오히려 독소조항이 강화됐다는 분석이다.

공정위는 규개위원들 사이에 무가지(無價紙) 비중 제한이 ‘경영활동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자 이 비중을 3개월까지 15%(당초 10%)로 한다고 수정했다.

그러나 지역특성과 경영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신문사 본사와 지국간의 관계를 ‘본사가 지국을 간여할 수 없다’며 획일화하는 등 판매활동을 위축시키는 내용을 포괄적으로 명문화했다.

특히 공정위는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 신문사를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할 수 있는 초(超)법적 규정을 그대로 고수해 이번 고시안이 언론압박용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치밀하게 강화된 고시안〓공정위는 4일 열린 2차 분과위에서 신문공정판매인총연합회를 동원해 전직(前職) 지국장의 주장을 그대로 규개위원들이 듣도록 했다. 이에 따라 ‘보완’된 안은 신문사 본사가 지국 영업활동 등에 간여하지 못하도록 못박았다. 신문사와 지국 사이의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조항을 강화시킨 것. 초안도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는 행위를 광범위하게 규제해 놓고도 수정안에서는 ‘본사가 일방적으로 지국에 불이익을 강요하는 행위’를 못하도록 하는 등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공정위가 임의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놨다. 또 ‘정상적인 거래관행’이라는 문구도 행정당국이 심판의 칼을 쥐겠다는 뜻으로 해석돼 신문협회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빅3 목조르기’ 월권조항은 그대로〓일부 민간위원들이 ‘초법적인 독소조항’이라며 ‘정치적인’ 의도 의혹을 불러일으킨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보완은 전혀 없었다.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를 공정위가 독과점사업자로 규정해 판매가 광고료 등을 결정하는 행위를 지위남용 행위로 몰아세우는 것. 공정위는 ‘빅3’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를 넘지 않더라도 사실상 시장지배사업자로 간주해 고시에서 이들의 사업활동을 규제하도록 했다. 민간위원인 김일섭(金一燮) 한국회계연구원장은 “공정거래법에 규정돼 있는 기준을 고시에서 맘대로 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정위 발상은 행정부처의 권한을 넘어선 초법적 일탈(逸脫)행위”라며 “(공정위의) 대표적인 권한남용 행위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은 민간위원들의 거센 반발로 13일 열릴 전원회의에서 어떤 형태로든 재검증 작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무가지 비중 ‘이랬다 저랬다’〓공정위는 규개위원들로부터 집중적인 지적을 당한 무가지 비중을 기존의 10%에서 ‘3개월까지 15%, 이후 10% 유지’로 바꿨다. 이는 공정위의 정책이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로 풀이된다. 그동안 1, 2차회의에서 규개위원들은 “신문사 무가지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것은 기업 경영활동에 개입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무가지 비중을 고시로 얽어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해왔다.

공정위는 고시 초안을 내놓을 때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전면금지’ 의견을 반영해 ‘6월말까지 20%, 올해 말까지 10%, 내년부터 전면금지’라는 안을 내놨다가 규개위 사무국으로부터 제지를 받아 철회한 적이 있다. 즉, 무가지 비중을 20%―10%―15%로 바꾸는 과정에서 ‘고무줄 잣대’를 들이댔다는 지적이다. 당초 10%를 제시할 땐 현행 자율규제에 따른 20%와 언개련 주장 0%를 단순평균한 것이며 이번 15%는 공정위 초안 10%와 예전 고시안 20%를 평균낸 값이다.

한 규개위원은 “무가지 비중이 14%면 공정거래이고 16%면 불공정거래라는 단순한 셈법이 어디 있느냐”며 공정위의 임의적인 잣대를 비판했다. 또 다른 위원은 “공정위가 기업 판촉활동에까지 간여하려는 것은 시장원리에도 맞지 않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자율규제 지원한다면서 고시 부활 ‘딴소리’〓공정위는 이번 고시안이 비판적인 신문사를 겨냥한 것이란 비난이 일자 고시 목적조항을 손질하는 편법을 썼다. 신문고시 제정이 규제가 아니라 자율시정 활동을 뒷받침하는 취지라는 표현을 이번에 추가로 넣은 것. 신문사업자의 자율적인 법 준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시를 제정한다는 궤변을 동원한 것이다. 그동안 신문협회는 고시 폐지 후 자율규제 활동이 강화되는 등 자율 시정분위기가 정착돼 가고 있어 새로 고시를 살리려는 공정위 움직임에 반대해왔다. 공정위가 자율규제 활동을 별로 인정하지 않고 자율 명분을 빌려 규제의 칼날을 세우겠다는 속셈으로 풀이된다.

<최영해·문권모기자>moneychoi@donga.com

공정위의 신문고시 수정안 비교
구분당초안수정
지국에 무가지(無價紙) 제공 허용 범위유가지의 10%―지국 사업자 영업개시후 초기 3개월간은 15%이내, 그후는 10% 이내를 유지
강제투입 허용기간3일7일
신문사와 지국간 불공정거래행위 규제-판매목표량 확대 강요 금지
-신문공급부수,공급단가,판매지역 등에 대한 신문사 일방 결정 금지
-임직원에게 자기 또는 계열사 발행 신문 잡지 구입 판매 강요 행위 금지
다음 사항을 더 추가
-신문 발행업자가 일방적으로 신문판매업자에게 불이익을 강요하는 행위 금지
-신문발행업자가 판매업자에게 신문을 공급하면서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춰 부당하게 자기, 특수관계인,또는 계열회사가 발행하는 신문, 잡지 또는 다른 출판물을 구입하도록 하는 행위 금지
고시의 목적 조항 관련―공정거래법 규정에 해당돼 금지되는 불공정거래 행위 및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의 유형 및 기준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유형 및 기준을 정함으로써 법집행의 일관성 및 객관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신문업 사업자의 자율적인 법준수활동을 지원함을 목적으로 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독과점지위 신문사(빅3)의 판매가 광고료 지국 공급가 제한보완 없음
공동판매 허용―지국에 경쟁사 신문을 못 팔도록 하는 행위 불가보완 없음
신문광고 규제―부당 유인행위 및 거래강제 불공정행위 금지보완 없음
지국 차별취급―신문공급과 관련,본사는 지국을 차별할 수 없음보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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