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김에…홧김에… 공격받는 경찰

  • 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48분


불타버린 파출소
불타버린 파출소
21일 오전 7시40분경 이모씨(45·목수)가 쏘나타승용차를 몰고 경기 용인시 구성면 용인경찰서 관할 구성파출소로 돌진했다. 차에 불이 나면서 불길이 옮아 붙어 파출소 1층이 전소되고 2층 일부가 탔다. 2층에서 자던 홍성표 상경(22) 등 3명이 연기에 질식하거나 뛰어내리다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10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났다.

이씨는 20일 밤 술좌석에서 헤어진 친구들이 싸움 끝에 파출소에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가 술 냄새를 맡은 경찰관이 음주측정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19%로 운전면허가 취소되자 앙심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씨는 “술을 마신 식당에서 차를 몰고 불과 20m 떨어진 파출소까지 운전했을 뿐인데 면허취소는 심한 것 같아 파출소로 다시 찾아가 항의했다”며 “나오다가 화가 치밀어 승용차를 몰고 파출소로 돌진했다”고 진술했다.

공권력에 의한 정당한 법집행이 맥없이 유린당하고 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 또는 코믹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실제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9일 새벽에는 서울 관악구 봉천3동 파출소에 대학생 6명이 화염병 4개를 던지고 달아났다. 김형열 순경(30)이 다쳤고 ‘포돌이 표지판’이 타버렸다. 붙잡힌 대학생 2명은 “봉천 3동 재개발과 관련, 관악구청 앞에서 집회하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로 화염병을 던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경기 성남시에서는 이모씨(39) 등 취객 4명이 폭행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이던 112순찰차를 가로막고 “집까지 태워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조수석 경찰관을 끌어내 넘어뜨린 뒤 권총마저 빼앗으려 했다. 결국 공포탄과 실탄을 발사한 경찰에 검거돼 구속됐다.

또 올 초에는 서울 사당동에서 여당 국회의원 운전기사 2명이 심야에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다 파출소에 연행된 후 파출소 기물을 부수고 당직 경찰관에게 구두를 내던지며 폭언을 퍼부었다.

검찰과 경찰은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 엄중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 대검은 최근 관공서 점거 및 농성 등 공권력을 훼손하는 불법행동에 대해 현장에서 관련자를 즉각 전원 검거하고 사법처리해 ‘공권력 도전사범은 반드시 처벌된다’는 풍토를 확립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경찰은 공권력 도전에 대한 정밀한 증거 확보를 위해 파출소의 감시카메라 기능을 보완하는 한편, 시위현장에서 종종 벌어지는 경찰관 폭행 등에 대해서도 법을 엄격히 적용할 방침이다.

이화여대 법대 박은정 교수는 “공공기관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기(公器)로 여겨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경기 불안과 과도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보다 극단적인 행동을 유도하고 그 대상이 공공기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경찰대 행정학과 표창원 교수(36)는 “미국과 영국 등 유럽에서는 시민이 경찰을 공격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공권력의 도전에 엄정하게 대처해 나가면서 경찰 스스로도 법을 엄정, 공정하게 집행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규·남경현·이완배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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