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장기수 부인편지]"통일되면 만나겠지" 마음 다독여

  • 입력 2001년 1월 18일 19시 09분


“저녁이면 ‘다녀왔소’라며 현관문을 들어서던 당신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지난해 9월2일 북한으로 떠난 비전향장기수 석용화(石容華·76)씨와 생이별한 부인 이혜자(李惠子·64·부산 동래구 안락동·사진)씨. 고향과 처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남편에게 ‘부칠 수 없는 편지’를 18일 동아일보에 보내왔다.

남편이 떠난 후 처음으로 맞는 설과 76회 생일(2월8일)을 앞두고 안부를 전하려고 해도 마땅한 방법이 없어 본보에 편지를 보내온 것.

‘동숙(큰딸·26)이 아버지. 이렇게 추운 날씨에 편찮은 데는 없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당신이 떠난 후 ‘웃음’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쓸쓸함’이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다시 만날 날을 그리며 모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정부 당국자에게 “석씨가 잘 살고 있더라”는 짤막한 소식을 접한 이씨. 그러나 당장 설을 맞으며 조상을 모셔야 하는 일에서부터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챙기던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올 설에는 두 딸이 당신을 대신해서 제사를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마음으로라도 집안의 안녕을 빌어주세요. 명절 때면 작은 선물을 주고받던 이웃들이 당신을 ‘모질고 독한 사람’이라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형제처럼 지내던 시장통 ‘뻥튀기 아저씨’도 당신이 북으로 떠난 뒤 어느 날 떠나고 말았습니다.’

북으로 간 다른 사람과 달리 고향이 남한(경남 양산)인데다 ‘자생적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27년간 한이불 속에서 잔 남편에 대한 그리움도 깊을 수밖에 없다.

‘당신이 떠나기 전날까지 수리한 낡은 문이며 집안의 구석구석에 당신의 체취가 묻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들어설 것 같아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있지요.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통일이 되면 만날는지…’ 하고 마음을 다독거리고 있습니다.’

이씨는 평생 남편의 꿈을 꾸어본 적이 없지만 최근 꿈속에서 남편을 만났다. 불쑥 자갈치시장에 나타난 남편. 그렇게 좋아하던 국밥 한 그릇을 권하자 ‘됐소, 아침에 가겠소’라며 휑하니 사라진 뒤 여태껏 아무 소식이 없다.

유난히 아버지를 따랐고 아버지 또한 끔찍이 사랑했던 둘째딸(22)은 “우리를 두고 떠난 아버지가 밉지도 않아? 꿈은 무슨 꿈”하며 핀잔을 주지만 “죽을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던 남편의 약속을 믿고 있다.

<부산〓조용휘기자>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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