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교육 '교사비판' 파문]"학교 현실도 모르면서…"

  • 입력 2001년 1월 12일 18시 34분


이돈희 교육부장관이 12일 중등교장협의회에서 사과성 발언을 한 뒤 고개를 숙인채 단상에서 걸어나가고 있다.
이돈희 교육부장관이 12일 중등교장협의회에서 사과성 발언을 한 뒤 고개를 숙인채 단상에서 걸어나가고 있다.
교사들의 안일함을 비판한 이돈희(李敦熙) 교육부장관의 발언이 신문에 보도된 12일 교육부와 언론사에는 이장관을 격려하는 학부모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날 교육부 장관실에는 “장관이 모처럼 시원하게 말 잘했다” “소신을 굽히지 말고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격려전화가 50여통이나 걸려왔다.

동아닷컴(www.donga.com) 홈페이지에는 400여건의 글이 올라왔는데 대개 이장관의 말에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이장관이 꼭 맞는 지적을 했는데 잘못의 지적에 기분 나빠만 할 것이 아니라 교사들이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한라산)

그러나 “저희는 부부 교사인데 남편은 매일 일거리를 집으로 갖고 와 가끔 말다툼이 나고 아이들을 데리고 눈썰매장 한번 못갔어요. 제발 그만 몰아붙이세요”(안경희)라는 글도 있었다.

전교조 홈페이지에도 수백건의 의견이 올라왔는데 이장관 발언에 대한 비판도 있었지만 지지하는 내용도 쏟아져 전교조측은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가장 매너리즘에 빠진 곳이 교육계다. 각계가 피눈물나는 자구책을 강구하는 상황에 교사들도 자기 살을 깎는 자성이 뒤따라야 한다.” “묵묵히 일하는 교사도 많은 만큼 처우개선 등 요구할 것은 요구하되 무능한 교사는 퇴출해야 한다.”

이장관 발언에 교사가 항의하는 내용으로는 “학교에 가면 선생인지 행정공무원인지 정신없을 정도로 잡무가 많아 연구할 시간이 없는 현실을 간과한 발언” 등이 있었다.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 전풍자(全豊子)회장은 “폐쇄적이고 변화에 무감각한 교육 현장의 실태를 이장관이 제대로 지적한 것인 만큼 자극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학교에도 자극과 경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출신 학원강사 김동일(金東逸)씨는 “학교에 있을 때보다 몇 배 노력해야 하는 강사생활을 하다 보니 ‘선생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한편 이장관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교원들의 ‘분노’를 의식한 듯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2000여명의 교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중등교장협의회 연수회에서 발언배경을 설명했다.

이장관은 “교사들도 사력을 다해 연구해야 하고, 교사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말인데 와전된 측면이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교사들을 상심시키고 괴롭게 만들었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교장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 “교육부가 학원이나 옹호하다니 말이 되느냐”며 혀를 차는 등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목포 해인여고 박광명교장은 “학교는 지식과 인성을 두루 가르치는 곳인데 어떻게 지식주입에만 전념하는 학원강사에 비유해 교사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학준(金學俊)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이 격려사에서 “정부는 교육개혁 과정에서 교원정년 단축 등을 무리하게 추진, 묵묵히 사도의 길을 걸어온 선생님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등 용서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한편 학생들은 이장관의 발언에 동감하면서도 교사들을 이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재수생 김모군(18·서울 강남구 도곡동)은 “교사들에 비해 학원 강사들이 더 열심히 가르치고 실력도 나은 것은 엄연한 현실”이라며 “유명 강사들은 교사 출신으로 박봉에 시달리다 학원으로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교사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고교생 네티즌은 “우리는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을 원한다”면서 “수업에 무성의한 교사가 많긴 하지만 퇴출 운운하는 살벌한 말보다 학교가 인간적인 교육의 장이 되도록 고민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인철·김경달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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