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벽 못버린 대도' 조세형씨 지난11월 일본 3곳서 절도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42분


‘대도(大盜)’ 조세형(趙世衡·62)이 일본 도쿄(東京)에서 물건을 훔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주거침입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5일 주일한국대사관과 일본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해 11월24일 도쿄 시부야(澁谷)에서 주택 3곳에 침입해 시계 라디오 등을 훔치다가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경찰에 붙잡히기 직전 칼을 휘두르며 저항하다가 경찰이 쏜 총에 오른쪽 팔 윗부분을 맞았다.

그는 체포 당시 여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이름을 ‘고양빈(高陽彬)’이라고 밝혔으나 일본경찰이 지난달 24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한국경찰측에 조씨의 사진과 지문을 보내고 신원확인을 의뢰한 결과 5일 조씨로 밝혀졌다.

일본경찰은 지난달 15일 조씨에 대해 주거침입 공무집행방해 총포도검단속법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며 절도 등 여죄를 추궁해 추가기소할 방침이다. 일본 경찰은 조씨가 체포될 당시 경찰에 대한 살의(殺意)를 갖고 있었다고 판단해 살인미수 혐의까지 포함했으나 기소시 이를 제외했다.

조씨가 훔친 물건은 손목시계 4개와 휴대용 라디오, 옷가지 등 그다지 값이 나가지 않는 것들이다. 특히 두 번째 집에서는 아무것도 훔치지 못한 채 나왔으며 세 번째 집에 들어가다가 주민의 신고로 붙잡혔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가벼운 절도를 했을 경우에는 강제퇴거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씨의 경우 경찰에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기 때문에 실형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또 한국 영사관에 협조나 면회요청도 하지 않았다. 조씨는 지난해 11월 17일 선교활동차 15일간의 관광비자로 일본에 입국, 초기에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98년 출소후 한때 '재소자 선교' 앞장▼

조세형씨(서울 종로구 혜화동)는 98년11월 30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나온 뒤 재소자와 전과자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는 목회자로 일해왔다.

조씨는 출소 이후 전국 교회를 돌며 신앙 간증을 해 왔으며 지난해에는 강남대 신학대학원의 1년짜리 목회상담 지도자 과정까지 마쳤다. 지난해 4월에는 서울 중구 당주동에 ‘늘빛선교회’라는 선교회를 만들어 선교활동을 펴왔다.

조씨는 지난해 4월 교도소를 드나들 때 알게된 서울시경(현 서울경찰청) 강력계장 출신의 최중락(崔重洛·보안경비업체 에스원 고문)씨의 강력한 추천으로 에스원 범죄예방연구소에 비상근 전문위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이곳에서 200여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 경비 시스템 설계자문 및 경비원들에 대한 초동수사 대처요령에 대한 강의 등을 맡아왔다.

에스원 최고문은 “지난해 후반부터 일본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한다면서 4, 5차례 회사 허락을 받아 일본에 다녀왔고 이번에도 같은 명목으로 지난해 11월17일 출국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초 일주일 예정으로 일본에 간 조씨가 12월4일 비자만료일까지 가족에게도 연락이 없어 걱정하던 차에 5일 경찰청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에스원 관계자는 “조위원이 일과 신앙생활에 모두 열심이어서 많은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고 전했다.

조씨는 출소후 99년 4월 자동차백미러제조업체 여사장(41)과 결혼해 화제를 뿌렸으며 10개월된 아들도 두고 있다. 한편 조씨가 경영해온 늘빛선교회는 임대료를 연체해 지난해 11월 폐쇄됐으며 가족들은 5일 현재 연락두절 상태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전문가가 본 범행심리▼

조세형씨는 왜 다시 범죄의 나락으로 빠져들었을까. 안정된 직장과 단란한 가정, 게다가 신앙간증과 방송출연으로 얻은 사회적 ‘명성’을 한꺼번에 잃게 될 수 있는 범죄의 길을 택했을까.

전문가들은 그의 절도범죄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절도와 개념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형사정책연구원 김은경(金恩璟·범죄사회학)선임연구원은 “조씨의 일본 내 범죄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는 하지만 자기과시 또는 자기실현의 한 방편으로 절도범죄를 선택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연구원에 따르면 생계형 절도를 제외한 절도범들은 일반적으로 독특한 심리적 특성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 예컨대 절도과정에서 스릴과 자기만족감을 느끼고 그 과정을 통해 절도에 관한 ‘전문기술자’로서 자기성취감을 맛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절도범 가운데는 극단적으로 절도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력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사회에서 오랫동안 격리돼 있다가 나와 갑자기 마치 영웅 같은 대접을 받다보니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환상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의 변호인으로 출감 후에도 한동안 조씨를 돌봐줬던 엄상익(嚴相益)변호사는 지난해 초 “조씨가 붕 떠있는 것 같다”며 “조씨에게 자만하지 말라고 야단을 친 뒤 연락이 끊어졌다”고 말했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