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10명중 3명 단순노무직 종사

  • 입력 2000년 12월 14일 18시 39분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 경영학과 졸업 예정자 김모씨(26).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60여곳에 원서를 보냈지만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보통 경쟁률이 200대1을 훌쩍 넘기 때문에 토익 점수와 학점이 상위그룹에 속하지만 불과 6곳만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면접에서 모두 낙방했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수준만 되면 입사하려는 생각이지만 쉽지 않아요.” 그는 요즘 ‘실업 재수냐, 단순 기능직이라도 일자리를 구하느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모대학 인문계열을 졸업한 하모씨(28)는 2년 동안 무직자로 지내다 최근 전공과 무관한 건물관리 일자리를 구했다. “부모님에게 눈치보이고 더 이상 놀고 먹을 수만은 없어서…”라는 게 ‘취직의 변’이다.

명문대 출신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연세대 취업 담당관실에는 요즘 “임금은 상관없다. 직무경험이라도 쌓아야 겠으니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알선해 달라”는 인문사회계열 졸업예정자나 여학생들이 종종 찾아온다.

지방대 출신은 최악의 상황이다. 지방의 한 국립대 취업보도실. 몇몇 졸업 예정자들이 모여 취업정보를 교환하고 있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한 학생이 “아예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니…”라고 한탄하자 다른 학생이 “물건 포장하는 일이라도 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 프리미엄이 사라졌다. 대학졸업 자체가 취업의 보증수표였던 시대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요즘에는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자기 ‘눈높이’에 턱없이 못미치는 노무직이나 단순 사무직을 구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정부통계로도 입증되고 있다. 15일 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발간한 ‘한국고용동향’에 따르면 대졸 취업자의 31%가 가사보조원 건물경비 물품운반원 등 단순 노무직 근로자로 취업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50.9%)이 한달에 8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용안정정보망 ‘Work―Net’에 등록된 11만8225명의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취업알선 실적을 분석한 수치다. 전체적으로 보면 일자리 하나를 두고 1.8명이 경쟁하고 있지만 전문대졸 이상의 경우 일자리 하나에 3.7명이 경쟁을 벌이고 있어 상당수 고학력자가 학력파괴를 무기로 하향 취업을 하고 있다는 것.

서울 구로고용안정센터 취업알선 담당 김재훈(金載訓)씨는 “대졸출신이 일단 대기업 공채를 선호하다가 여의치 않자 눈높이를 낮춰 지원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11·3 퇴출 조치’ 이후 기업들이 당초 예상했던 모집인원을 대폭 줄인 데다 8000여개의 외국기업을 비롯해 상당수 기업이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면서 대학 졸업생들이 설자리가 더욱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또 고용보험 피보험자를 분석한 결과 근속연수나 나이 등을 비교할 때 대학출신이 고졸 출신에 비해 임금은 불과 10%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앙고용정보관리소 박천수(朴天洙)책임연구원은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득될 게 거의 없다. 대졸이라도 전문성을 키우지 않으면 취업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풍부한 직무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세대 김농주(金弄柱)취업담당관은 “1년 동안 전공과 관련된 회사에서 준사원 대우를 받으며 직무경험을 쌓는 미국식 ‘인턴 휴학제’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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