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돈줄이 막혔다]전문가가 내놓는 처방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45분


금융시장이 스스로 기능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상태에 빠져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용을 보강한 회사채인 프라이머리 CBO나 채권전용펀드같은 ‘땜질처방’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금융을 하는 기관을 확충하고, 정크본드(투기채)시장을 활성화하며,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신축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시중에 넘치는 자금이 기업으로 흐르도록 유도하는 펌프기능을 정부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투신운용 황영기(黃永基) 대표는 “자금이 안전한 곳으로 몰리는 질(質)로의 도피(flight to quality)를 넘어 신용공황(credit panic)상태”라며 “철저한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기업이 정리돼야 신용이 회복되고 자금난도 풀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금융기관이 육성돼야〓전경련 김석중(金奭中) 상무는 “기업자금난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라며 “기업금융을 할 수 있는 기관이 많이 나오도록 정부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리스 종합금융 투신 등의 기능이 마비됐으며 은행도 기업금융보다는 가계금융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상무는 “회사채나 CP 인수, 신용보강, 리스 등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채자금을 양성화하거나 외국인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크본드시장 활성화〓최근 기업자금난의 핵심은 부실기업과 우량기업 사이에 금리차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필요자금을 조달하려면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한화증권 진영욱(陳永旭) 사장은 “연 20%대에라도 자금을 조달해 1년가량 버티면 살아날 수 있는 기업은 고금리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자금경색이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 이태규(李泰奎) 조사연구국장도 “현재 기업의 위험도에 비해 금리가 낮기 때문에 회사채나 대출시장이 기능하지 않고 있다”며 “위험이 높은 기업은 고금리를 부담해야 은행 등 금융기관이 자금을 제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BIS비율의 신축적 적용〓BIS 크뢰커 총재는 ‘경기순환적 감독정책’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가 안 좋을 때는 BIS비율을 낮게 운용하고 경기가 좋을 때는 높게 유지하도록 감독당국이 지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BIS비율 8%를 절대시(Magic Num―ber)하고 있다. 8% 밑으로 떨어지면 부실금융기관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대출금을 회수해서라도 BIS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은행이 반드시 BIS비율 8%를 넘어야 한다는 기준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

메릴린치증권 남종원(南宗沅) 한국대표도 “BIS비율 8%를 지키지 못하면 부실금융기관으로 평가하는 식으로 BIS비율을 절대시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은행경영평가위원장을 맡았던 서강대 김병주(金秉柱·경제학)교수도 “BIS비율만으로는 은행의 생존가능성(Sustainability)을 측정할 수 없다”며 “부실채권비율 수정ROA(총자산이익률) 비용구조(Cost Ratio) 1인당영업이익 등을 보조지표로 활용해 은행 건전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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