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해진 개인]"주식에 울고 빚 눈덩이" 한숨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50분


▼지출은 늘고 예금은 줄고▼

과소비 등으로 여윳돈이 줄면서 예금을 점차 줄이는 반면 돈을 빌려서까지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업들은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등 직접 금융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 2·4분기(4∼6월) 자금순환동향(잠정치)에 따르면 4∼6월중 개인의 은행 예금은 23조6960억원으로 전분기에 비해 10조원 가량이 줄었다. 지난해초만 해도 46조3200억원에 달하던 은행 예치금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 이는 올 상반기중 소비증가율이 11.7%로 소득증가율 10.8%를 상회하면서 소비지출이 크게 늘어 예금이나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윳돈(자금잉여)이 전분기에 비해 10조원 가량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여윳돈이 줄었는데도 개인들이 주식투자한 자금은 전분기 4760억원에서 1조586억원으로 늘어났다. 여윳돈이 크게 준 가운데 투자금액을 늘리려다보니 금융기관 차입금은 4∼6월 9조원까지 불어나 개인자금운용액 중 빚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육박했다. 지난해초만해도 이 비중은 3.4%에 그쳤었다. 한국은행 김영헌(金泳憲)조사역은 “소비가 늘다보니 은행예금은 점차 줄게되고 주식투자 등을 위해 대출이 늘어나면서 가계의 자금내용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며 “은행의 예금감소는 산업자본화 할 수 있는 재원이 줄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주식 대박 대신 쪽박▼

개인투자자들은 반도체 등 하락폭이 가장 큰 종목을 집중매수해 손실을 자초했다. 한마디로 외국인들이 ‘던진 주식’을 싼 맛에 덥석 물었다가 추가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는 얘기다. 하락장의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주가하락이 본격화된 지난달말 이후 이달 22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이 순매수한 상위 20개종목의 주가하락률은 무려 26.12%.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의 순매수종목 하락률(각각 ―9.27%, ―16.91%)에 비해 훨씬 높았다.

개인들은 주가하락 기간 중 삼성전자를 7203억원어치, 현대전자를 3651억원어치 순매수했으나 주가는 오히려 각각 30.5%, 29.3%씩 폭락했다. 실제로 이 기간중 반도체 업종의 주가는 무려 32.69% 급락, 하락률 1위를 기록했다. 개인투자자들은 또 하락종목(435개)에 대해선 1조3264억원어치 순매수한 반면 상승종목(146개)은 오히려 193억원어치 순매도해 장세에 역행하는 투자로 손실폭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반도체 업종에 대해 8840억원어치 순매도하는 등 하락종목에 대해 1조3654억원어치 순매도했으며 상승종목에 대해선 50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주가하락기간중 외국인 순매수종목의 특징은 경기변화에 따라 수익기반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경기방어주’가 상위권에 포진했다는 점이다. 외국인 순매수 2∼4위인 신세계백화점 고려아연 금강고려화학은 탄탄한 내수기반을 갖춘 회사들로 약세장에서도 주가는 오히려 5.3∼10.7%나 올랐다.

증시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반도체 업황부진과 금융구조조정의 불안 등 증시 주변악재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반면 개인들은 단순히 ‘가격메리트’차원에서 매수종목을 선정, 손실을 자초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샐러리맨 보증 공포증▼

A은행에 다니는 L씨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5년 넘게 같이 근무하던 갑이 동료직원의 보증을 받아 몇몇 은행에서 2억원 가량 대출받은 뒤 최근 잠적했기 때문이다. 갑의 보증 요청을 받은 동료 20여명은 대부분 아무런 거리낌없이 보증에 응했다. 갑이 돈을 떼먹고 잠적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었다.

중견 제조업체에 다니는 C씨는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보증 서준 시골친구가 대출금을 갚지 않아 보증인인 그에게 돈을 갚으라는 통지서를 은행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낸 친구가 지난해 9월, 아파트를 사려는데 2000만원이 모자란다며 보증을 서달라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응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할말을 잃었다.

국제통화기금(IMF)위기 때 한차례 홍역을 겪은 뒤 보증이 위험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한동안 잠잠하던 보증문제가 주가가 폭락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대부분의 샐리리맨들이 3000만원 안팎의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했는데 주가가 폭락해 원리금상환을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한 은행 지점장)이다.

한동안 뜸하던 월급 가불도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 급여후생과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한동안 가불금 신청은 없었는데 9월 들어 100만∼200만원의 가불금을 신청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주가하락이 계속되면 자살하는 샐러리맨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한 광고회사 직원의 말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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