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한빛銀수사 문제점]본인이 부인한다고 무혐의라니…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25분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검찰은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의 성격을 ‘전 관악지점장 신창섭(申昌燮·48·구속기소)씨가 아크월드 대표 박혜룡(朴惠龍·47·구속)씨와 공모해 주도한 대출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박씨 뒤에 권력 실세가 있다고 믿었던 신씨의 오인(誤認) △사업가적 성향이 농후한 신씨의 비정상적인 자금 운용 등 신씨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권력형 비리와는 거리가 먼 개인 비리 또는 금융 사고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는 ‘중간’ 수사 결과일 뿐이며 자금 추적과 관련자 조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 사건을 ‘단순’ ‘대출사기극’으로 확실하게 못박아 추가 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거나 결론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밝혀낸 사건 전모〓검찰은 범행 동기와 수”법 등을 3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먼저 신씨가 지난해 3월 관악지점장으로 부임한 직후 박씨가 ‘박지원(朴智元) 대통령 공보수석의 조카’라고 하고 지점 직원들도 그것이 틀림없다고 확인해줘 이를 믿고 대출금이 44억원에 불과했던 박씨에게 올 1월까지 154억을 추가로 대출해줬다는 것.

그러나 박씨 회사가 초기 투자에 실패, 자금난을 겪고 이에 따라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문책당할 위기에 처하자 박씨와 공모해 박씨 협력업체 명의로 내국신용장을 위조, 관악지점에서 이를 매입하는 수법으로 260여억원의 돈을 추가로 빼냈다. 이 과정에서 신씨 등 관악지점 은행원 3명이 6500만원의 대출 사례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불법 대출금은 아크월드와 록정개발 에스이테크 등 3개 회사에 총 466억원이 나갔는데 이중 3억원은 갚았다. 463억원중 114억원은 담보대출로 사실상 문제되지 않으며 나머지 349억원 가운데 266억원은 장부에 차입금으로 정상 기재돼 있다. 따라서 83억원이 비게 되는데 자금 추적 결과 이중 80억원 가량은 기존 대출금 상환과 주택청약예금 등으로 사용됐고 최종적으로 확인이 안된 금액은 3억원에 불과하다고 검찰은 밝혔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무엇보다 대출 동기가 석연치 않다. 검찰 결론에 따르면 외압도 없었고 신씨가 사례금으로 받은 돈도 많지 않다. 검찰은 신씨 개인의 ‘독특한 성격’을 답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수백억원의 대출금이 지점장 개인의 ‘성격’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금융계 인사들조차 고개를 젓는다. 대출 동기를 신씨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렸기 때문에 추가로 제기된 의혹, 예컨대 한빛은행 이수길(李洙吉)부행장 또는 그보다 더 높은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대출압력 행사 여부 규명은 근처에도 못 갔다.

▽수사 절차 및 과정의 문제점〓대형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수사 ‘결과’보다 ‘과정’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외압 의혹 당사자들에 대한 수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압의 중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부행장을 단 한차례만 조사하고, 그것도 본인이 부인한다는 이유로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여러 차례 실명이 거론된 박지원장관에 대해서도 최소한 한번쯤 소환조사는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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